사회

자사고 폐지 논쟁은 왜 뜨거운 감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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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립형사립고(이후 자사고) 지정 취소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뛰어난 학생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는 수월성 교육과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평등 교육 사이의 논쟁은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다른 측면, 어쩌면 더 본질적인 측면이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

자사고를 둘러싼 쟁점의 근본에는 교육에 대한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지배계급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말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잘 보여주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이 교육에 집착하게 만들고 입시에 목을 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에 대한 기대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평범한 수준의 소부르주아나 노동자들에게는 이 두려움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비싼 주거비, 높은 물가, 게다가 등록금 대출에 따른 빚까지 지고 출발해야 하는 청년들이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기업, 정규직, 안정적 일자리를 가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패할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평생 고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부모들도, 자녀들도 모두 이 경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다.

환상에 집착하는 이유

결국 자사고의 존폐 문제는 내 아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에서 중요하고 필요한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끔찍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소수 특권층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해줄 것 같은 특별한 학교는 목숨줄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자사고를 폐지하면 교육을 망친다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청년 고용률은 43.2%이고 청년 취업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아무리 좋은 학교에 간다고 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자본주의 약육강식 논리와 연결돼 뿌리깊게 확대재생산된다.

생각을 좀 바꿔보자

모든 노동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교 졸업 이후 일을 시작해서 경력이 4년 된 노동자와 대졸 노동자의 임금이 같다면?(현재는 4년 경력이 대학졸업보다 덜 인정받지만, 현실에서 4년 경력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를 국가(사회)가 책임진다면?

지금처럼 모두가 의사를 꿈꾸고, 연간 20~30만 명의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직업을 구하는 기준이 임금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스펙 쌓기나 입시 준비, 취업 경쟁에 청춘을 다 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자사고나 외고에 가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매달리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이처럼 입시와 대학을 비롯한 교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노동에 대한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고, 노동의 종류에 따른 임금 격차가 벌어질수록 교육의 서열화는 가속화되고 경쟁은 심화된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연결된 문제들

자사고 폐지와 평등한 노동 사이의 간극은 넓다. 하지만 이 문제들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이해하지 않고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바꾸려고 한다면 끊임없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평등한 교육을 쟁취하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과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투쟁하는 노동자와 가족, 지금의 교육제도와 자본주의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함께 연대해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자율형사립고는 고교평준화를 보완하고 교육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로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학생 선택권과 학교 자율성, 교육다양화를 확대한다는 미명 아래 자사고를 확대했다. 지금 존재하는 전국 42개 자사고 중 34개가 이명박 정부 당시에 설립된 것이다. 하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자사고는 입시에 최적화된 기관이 됐다. 90%가 의대에 진학한다는 상산고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자사고의 학비는 일반학교에 비해 매우 비싸다. 일반학교의 경우 연간 280여만 원의 학비(올해 2학기부터는 단계적으로 고교무상교육이 실시될 예정)를 부담하는 반면 자사고는 평균 1,133만 원, 민족사관학교의 경우 2018년 공시된 학비만 2,741만 원이다. 교육 서열화와 공교육 약화, 사교육비 증가, 경제적 능력에 따른 교육불평등 심화 등의 이유로 자사고, 외고 등과 같은 학교들을 일반학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대통령 및 진보교육감들의 공약이기도 하다.

권보연

<노동자의 목소리> 17호,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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