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일본 정부는 ‘왜’ 한국 경제 제재에 나섰나?

아베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일본 기업이 삼성, SK, LG 등 한국 기업에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막는 상황은 매우 의아하다. 수출하지 못하면 일본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이 소재와 부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한국이 가공해 중간재를 만들고, 중국은 조립해서 팔았다. 이렇게 이윤을 확보하던 국제적 분업체제를 이번에 일본이 뒤흔들었다. 이번 경제 제재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타격을 받으면 소재, 장비를 수출하던 일본기업들도 이윤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일본은 왜 경제 제재에 돌입한 것인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 표면적 이유

일본 정부의 경제 제재 계기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이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3년 만에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본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아베는 경제 제재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부터 강제징용까지 제국주의 식민지배 당시의 범죄에 대해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항의하는 수단으로 경제 제재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타국을 점령해 전쟁과 학살을 일삼은 자들이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 제재가 갑작스런 일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 이후인 작년 11월부터 준비되어 오던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속내

아베의 속셈은 더 있다. 아베는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일본 내의 극우세력들을 결집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려 했다. 실제 일본 참의원(일본 상원의회) 선거의 후보등록과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4일 경제 제재를 감행했다.

특히 자민당은 유권자들을 만날 때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언급하라는 조언을 선거 지침으로 내놓으며 한국과의 갈등을 선거에 활용할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집권당인 자민당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보수적 유권자들을 묶어 두려는 ‘득표 전략’의 하나로 경제 제재 카드를 꺼낸 것이다.

장기적 계획 – 군사 대국화

아베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헌하는 명분으로도 한국 경제 제재를 활용하고자 한다. 일본에선 2차 대전 패전 후인 1946년에 ‘영구적으로 전쟁 수행 권리를 포기하고 군대 유지를 금지’하는 헌법 9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아베는 2012년 집권 후부터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고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로 바꾸는 개헌을 끊임없이 주창해왔다. 개헌으로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과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에서 모두 2/3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아베 정부는 내년까지 개헌을 완료하겠다고 장담해 왔다.

그동안 아베 정부는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도발을 근거로 삼아 군대 보유와 개헌을 주장해 왔는데, 최근 북한과 미국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갈등이 축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베는 또 다른 명분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대하고 경제 제재에 돌입하면서, 개헌 동력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세력은 과반수를 훌쩍 넘겼지만 2/3 개헌 인원을 확보하진 못했다.]

잃어버린 20년

자본주의 경제가 세계적으로 위기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일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9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20년 넘게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여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졌다. 이때 자민당 아베는 ‘강한 일본’을 주창하며 집권했다. 한쪽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개헌 등으로 극우적 행보를 하고,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국가재정을 퍼부어 경제를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 성적표는 초라해, 재작년 1.9%였던 성장률은 지난해 0.8%로 반토막 났다. 2018년 일본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국가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180%)보다도 높은 230%에 달한다.

제국주의

장기불황이 좀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베의 전략은 무엇인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국보다 강한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한국을 무릎 꿇려야 한다.

당장은 반도체 소재를 수출하지 못해 일시적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경제 제재를 강행해 힘을 과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우위에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줘 한국 경제를 쥐고 흔드는 힘이 일본에 있다는 걸 보이려 한다.

무분별한 경쟁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아베까지 나서서 무역에 장벽을 쌓고 있다. 세계적 경제분업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무계획적이고, 경쟁적인 경제시스템이 가진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경제적, 군사적 패권싸움도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경제도발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불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영원할 듯 얘기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다.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나방처럼 움직이며 인류가 만들어놓은 경제적 토대를 파괴하는 데로 흘러간다.

생명력을 다한 시스템에 미련을 둘 이유는 없다. 노동자계급이 통제하는 보다 계획적이고 협력적인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부의 이득이 아니라 전체의 풍요를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회주의라 부른다.

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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