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 인류, 지구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나탈리 아르토

{이 글은 프랑스 혁명조직 LO(노동자투쟁. https://www.lutte-ouvriere.org)의 대선 후보이자 대변인인 나탈리 아르토가 6월 9일 LO 축제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5월 하순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노동자계급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밝히고 있다. 원 제목은 ‘좌파전선을 되살리려는 시도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분명히 드러내자’다. LO 주간신문 <노동자투쟁> 2654호에 실린 글을 번역했다.}

노동착취에 기반하고, 거대 자본이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에서 착취받는 자들의 운명을 선거로는 절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선거에 나간다. 노동자들이 노동자강령의 깃발 아래 모이고, 부르주아 질서에 반대하는 당을 자기 당으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선거에 나간다.

약 18만 명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리를 지지했다. 그건 매우 적은 수치다. 그리고 이것은 현 시대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위기와 노동운동 후퇴의 시기 말이다. 유럽의회 선거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방향상실을 보여줬다. 기권하거나 [민족연합] 르펭한테 투표한 노동자들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번 선거를 마크롱 정부를 반대하는 국민투표로 만들자고 제안했던 사람들(르펭과 멜랑숑이 그랬다)을 지지했다. 거만하고, 반노동 정책을 펴는 마크롱에 반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르펭한테, 마크롱을 궁지로 몰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던 후보단한테 투표했다.

르펭한테 투표한 모든 노동자가 르펭의 모든 정책을 신봉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르펭의 민족주의와 외국인혐오증이 노동자계급에게 독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

멜랑숑의 ‘불굴의프랑스’부터 프랑스공산당까지, 이른바 좌파정당들이 모두 오랫동안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보여 왔기에 노동자들이 그렇게 선택한 것이 아닌가? 노동계에서는 ‘프랑스를 재건하자’는 프랑스공산당의 슬로건이 르펭의 ‘민족우선’ 정책에 길을 열어줬다.

사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많은 노동자가 극도로 반노동자적인 운동이 커지도록 도와줘 왔다. 그런 반노동자운동은 노동자계급을 출신과 종교에 따라 분열시켜 자라는 세력인데 말이다.

좌파연합은 노동자들에겐 덫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선거결과가 재앙적인 상황에서 좌파 지도자들이 다시 한 번 통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신들의 가재도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결국 좌파 통일의 길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독소를 제공하는 좌파연합의 오래된 요리를 리필하는 방식으로는 마크롱에 반대할 수 없다.

미테랑, 죠스팽, 올랑드를 중심으로 좌파당들이 연합했던 모든 시기에, 그들은 노동자들에 맞서며 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통치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크롱의 정치게임은 르펭의 민족연합[RN. 전 민족전선]과 양자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에 있다. 하지만 르펭의 당이 많은 사람의 눈에 대안정당으로 비춰지는 것은, 좌파당들이 집권했을 때마다 배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당과 공산당이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의 의식을 흐리게 만들어 왔다.(…)

이런 선거압력[르펭의 당선을 막기 위해 우파 시라크를 찍자고 하는 등의 압력]은 많은 노동자들이 백만장자한테 투표하는 것을 더 이상 당황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논리와 태도를 흐릿하게 만들어 왔다.

똑같은 환상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은 전망이 될 수 없다. 미테랑과 올랑드는 [대통령 후보] 선발을 잘못한 경우가 아니다. 문제는 노동자를 위해 좋은 대통령이 돼 줄 좌파 후보를 잘 발굴하는 게 아니다. 그런 대통령은 프랑스에서도 없었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 대자본의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권력에 오른 모든 사람은 대자본의 이익에 완전히 충성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선고받은 셈이다.

유일한 대안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지배를 받아들이고, 돈의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그 질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 즉 단결할 수 있고 자신들의 이해를 자각할 수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준비를 할 것인가?

재건할 필요가 있는 것은 노동자들과 실업자들, 정년퇴직자들의 요구를 전면에 제기할 수 있는 노동자당이다. 에어버스[유럽 항공기 제작업체 및 방위산업체], 푸조시트로앵(PSA) 자동차, 알스톰[전력 및 운송대기업] 같은 대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당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자들의 관점을 움켜쥘 수 있는 당이 필요하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할]최고 구원자의 역사에 대해 말하지 않는 당, 노동자들이 자기 이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결투쟁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하는 당이 필요하다. 이 투쟁의 결말은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아 임금노동을 철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진영은 추상이 아니다[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LO는 ‘대자본에 맞서는 노동자진영’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것은 의식적인 정치적 선택이기 전에 사회적 실재다. 노동자들이 있는 한 투쟁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서고 싸우는, 지식인들을 포함한 여성과 남성이 있을 것이다.(…)

거리와 회사에서 벌어지는 것이 어떤 투표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들의 투쟁에서도, 노동자들에겐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적이 누구인지, 어떤 요구를 내걸고 어디에 치명타를 입힐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전체 자본주의 질서를 타도해야 한다는 의식을 노동자들이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투쟁이 유산됐고, 파국을 맞았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당면 이해와 [궁극적] 전망을 대변하는 정책을 방어해야 한다.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에서도, 아주 사소한 작업중단에서도, 파업에서도, 시위에서도, 그리고 선거투쟁에서도 말이다.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나중엔 거리에서 수십만 명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확신을 갖고 방어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편에 서는 경향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대자본에 맞서야 하는 투쟁들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것이 사활적 임무다.

자본주의 논리는 생태와 양립할 수 없다

이번 유럽연합 선거에서 생태주의자들이 얻은 결과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정당한 관심을 보여준다.[프랑스녹색당은 13.47%를 득표해 유럽의회에서 13석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어느 정도의 비정치적 태도를 보여준다. 프랑스 녹색당(EELV)의 자도(Jadot) 후보는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문제삼을 필요가 없고, 오직 더 많은 생태적 관심만 갖게 하면 된다.

그의 정책은 지배적인 사상을 옹호한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왜냐면 자본주의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교육을 바꿔야 한다. … 왜냐면 우리는 너무 많이 소비하고, 나쁘게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를 너무 많이 갖고 있고, 디젤차를 너무 많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재고가 더 많이 쌓이는 걸 원치 않는 거대산업, 무역기관들이 트럭들을 도로로 내몰고 있다. 철도 화물은 줄어들고 있다. 도시들에는 공공교통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재정이 부족하다. 사무실들은 비어 있고, 공장들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

산림벌채, 지하수 오염 등으로 지구 전체가 서서히 파괴당하고 있다. 빈국들 전체가 위험한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운동의 시대가 왔다면, 우리는 전체 사회질서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경제의 지렛대를 쥐고, 생산, 에너지, 운송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국가와 함께, 이 자본가들이 우리의 소비양식과 이동방식을 결정한다.

그리고 자본가세상의 특징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거기엔 도덕이 없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타도하지 않으면 환경과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사적 이익이 우선인 이 체제를 바꿔, 거대한 생산수단들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전체 사회의 이익을 우선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가 낳은 거대한 생산력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사적 소유라는 장애물을 끝장내야 한다. 경제를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가로막는, 공장, 은행, 교통운송기관과 거대 유통회사, 다국적 정보통신 회사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빼앗아야 한다.

이런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라는 말의 본뜻이다. 이 말은 변질돼 왔다. 하지만 그 말은 풍부한 뜻을 담고 있다. 경제를 집단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조직하면, 개인들의 생존투쟁은 끝나고 결국 인류는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경제위기, 대량실업, 전쟁, 테러, 환경위기, 부국들에서 쫓겨나는 이민자들. 현재의 지도자들, 즉 다국적기업과 거대 은행,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 더 나쁘게도, 그들은 인류 전체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여기에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이 주장은 노동자들의 투쟁의지가 지금 낮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공상처럼 들릴 수 있다. 최근에 여러 사회범주가 싸우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노란조끼 운동을 보라. 하지만 현장에서 거대한 노동자운동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 비록 노동자들이 노란조끼 운동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본가들에 맞서고, 그들이 비용을 지불하게 하며, 실질적 진보를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동자계급을 신뢰하는 것은 주어진 순간에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전투적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 또한 노동자들이 이런저런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도 않다.

노동자들이 타고난 혁명적 감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들의 집단적 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들은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개인주의, 개인적 성공, 민족주의, 편견 등을 받아들여 사회에 적응한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사회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으로부터 나온다. 맑스와 엥겔스의 근본적 기여 중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자기 안에 사회주의를 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모으고, 집중시켰으며, 수십 수백만 노동자를 결집시켰다. 다국적 기업들은 사실 노동과 생산을 사회화하고 집단화했다.

수만, 수십만 피고용인들이 같은 생산과정으로 통합돼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 사람의 자본가 또는 소수 부르주아 가족을 위해 노동한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만 폐지하면 된다. 전체 사회에 속해 있는 생산수단을 대자본가들로부터 빼앗아 오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말했듯이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다.

노동자계급은 이미 거대한 투쟁, 총파업, 반란, 심지어 혁명을 전개했다. 노동자계급은 1917년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혁명적 전망을 높게 치켜들었던 이런 예외적 시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동자계급은 모든 해방사상을 발전시켰다. 남녀평등, 식민지 독립, 인종차별 반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 미국 흑인 인권 투쟁 등등.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의식이 오르내린다고 해서 우리가 사상과 강령을 바꾸진 않는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가 사라질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 가난이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돈 때문에 썩어버리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오랫동안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깃발이다. 사회, 인류, 지구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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