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영화 ‘기생충’ – 계급사회의 현상만 보고 본질은 못 본다

기생충

신랄하게 묘사한 계급사회의 단면

젊은 시절에 비가 쏟아졌을 때 변기통이 역류해 내가 살던 반지하방에 똥이 둥둥 떠다니는 참담한 광경을 보았던 적이 있다. <기생충> 영화에는 이런 반지하방과 완전지하방에서 쪼들려 사는 빈곤층이 나오고, 언덕 위의 화려한 대저택에서 풍족하게 사는 부유층이 나온다.

홍수가 났을 때 반지하방은 물에 잠겨 빈곤층은 이재민이 되지만, 부유층 아들은 푸른 잔디밭에서 물이 조금도 새지 않는 미제 텐트를 치고 자고, 부유층 부모들은 홍수 다음날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씨가 좋다며 즉석 파티를 연다.

빈곤층은 쉽게 실업자가 되고, 그 자녀는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하지만 부유층은 쉽게 떼돈을 벌고, 자녀들은 고액과외를 여러 개 받는다.

부유층은 운전사와 가사도우미를 거침없이 해고하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 냄새가 난다며 서민에 대한 거부감마저 드러낸다.

이런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만이 아니다. <기생충>을 보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이건 우리 얘기다’고 말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외면한 질문 – 빈부격차는 왜 생기는가?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IT산업)의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네이버에서도 노조를 만들 정도로 IT산업의 많은 노동자는 장시간, 고강도, 무권리 노동에 시달려 왔는데, 박사장도 이렇게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거대한 부를 쌓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노동착취에 근본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기생충> 영화는 이런 노동자계급의 관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빈부격차의 원인인 노동착취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그냥 빈부격차의 현상만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생산과정의 착취는 주목하지 않고 소득 분배의 차이만 주목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사회학의 시각이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부유층 가족을 포함해 “영화 속 세 가족이 모두 기생충이라고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가난한) 두 가족이 기생충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기생충> 영화의 결정적 한계다. 노동자계급을 착취해 호화로운 삶을 사는 진짜 사회기생충(자본가 가족)에 대해서는 기생충으로 정확히 묘사하지 않고, 대만 카스테라 가맹점 등을 하다가 파산하고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이나 온갖 노력을 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실업노동자들을(즉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희생자들을) 기생충으로 분명하게 묘사하는 것은 봉준호 감독이 빈부격차를 자본가계급이나 중간계급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어떤 답도 없는 답답한 영화 – 현실엔 답이 있다

<기생충>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빈자들의 파괴적 갈등이 다뤄진다. “어제는 우리가 너무 흥분을 해가지고…”, “좋게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겠어?” 같은 마음이 일부에게 없는 건 아니지만, 빈자들은 무계획 속에서 대립하다가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빈자들과 노동자들에게 이런 분열에 따른 파멸 말고 다른 해결책이 진짜 없단 말인가? 영화를 본 어떤 노동자는 “이 영화가 우리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 노동자들은 분열 대신 단결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가 <기생충> 영화에서처럼 파괴적 갈등에 빠져드는 대신, 임금을 올리고, 복지혜택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해고를 막기 위해 씨줄 날줄을 엮듯 단결의 힘을 짜나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금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지하철을 달리게 하고, 환자를 치료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등 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면서 사회와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결국엔 노동착취에 기초해 살아가는 자본가계급 기생충들을 쓸어버리고 노동자세상을 건설할 무한한 잠재력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와 그 가족을 기생충으로 묘사했으니, 이 영화는 빈부격차를 고발하는 듯하면서도 노동자들을 은근히 모독하는 부르주아 상업영화다.

따라서 영화를 보려면 노동자계급의 예리한 눈을 갖고 비판적으로 보길 권한다.

김명환

<노동자의 목소리> 16호,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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