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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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남목고개를 넘고 있다. (출처 : 현대중공업지부 홈페이지)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하는 주주총회가 사측의 꼼수로 끝났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6월 14일엔 장장 18km에 이르는 울산시청까지 3천여 명의 노동자가 행진했다. 20일에도 역시 3천여 명의 노동자가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원·하청 공동집회를 열었다.

물론,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이 정도고 현장 안에서는 현장순회, 물류차단 등 거침없는 파업전술들도 지속되고 있다.

우호적 여론

5월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 이후에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보수언론들이 사측의 일방적인 증거와 주장을 받아쓰면서 현대중공업지부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이 하나둘 확인되었고 여론도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현대중공업 사측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하고 있는지 많은 언론에서 알아서 폭로해줄 정도다.

울산지역은 이미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14일 울산시청으로 행진할 때도 많은 시민이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분들부터 작은 음료라도 스스로 나눠주던 상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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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울산시청까지의 대행진 중 태화강역에서 현대중공업노동자들의 점심식사를 돕고 있는 가족들

소극적이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바뀐 것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이다. 그동안은 앞으로 나서지 않았던 가족들이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차량용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했다. 14일 행진 때는 중간에 오이도 나눠주고 점심 때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했다. 26일 전국노동자대회엔 현대중공업 노동자를 지지하는 부채도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이처럼 가족들도 투쟁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까지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의 변화

6월 11일 현대중공업지부와 현중사내하청지회는 “하청조합원 조직 확대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법인분할 주총무효와 하청노동자 임금 25% 인상을 목표로 하청노동자를 조직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조선산업에서 정규직노조가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탄압과 생계를 책임지며, 하청지회 교섭이 끝나지 않으면 정규직도 교섭을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상당한 일이다.

이 기자회견 이후 하청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들이 실행되며 20일 원‧하청공동집회가 열렸다. 하청노동자 조직화는 우선 2천명 조직화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가 크지 않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정서가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4월 대규모 임금체불 때문에 투쟁에 나섰던 하청노동자들은 뭉쳐서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도움을 줬던 현대중공업지부와 현중사내하청지회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이 하청노동자들은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서서히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젠 오픈채팅방 이름인 “하청다함께” 깃발을 휘날리며 오토바이 시위를 수시로 할 정도다.

하청노동자오토바이시위
오픈채팅방 “하청다함께”로 모인 하청노동자들은 수시로 오토바이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오픈채팅방 하청다함께)

20일 원·하청공동집회에서도 이들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현중지부 앞에 모여 당당히 오토바이를 타고 정문을 통과해 집회현장으로 들어서던 하청노동자들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파업투쟁과 하청노동자 조직화

20일 원·하청공동집회에서 이성호 현중사내하청지회장은 “현중자본의 아킬레스건을 봤다”고 했다. 이날 하청노동자와의 공동집회를 막기 위해 현대중공업 사측은 온갖 짓을 다했다. 일부 부서는 12시나 3시쯤 조기 퇴근시키고 공정 때문에 바쁜 곳은 강제로 8시까지 잔업을 시켰다. 게다가 조기 퇴근한 하청노동자들(약 2천여 명으로 파악된다)은 무급이거나 연차를 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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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원하청노동자공동집회에서 이성호 현중사내하청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이성호지회장이 말한 아킬레스건이란 바로 이것이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원·하청노동자의 단결투쟁을 가장 두려워한다. 정규직노동자의 파업으로 지연된 공정은 하청노동자들을 잔업, 특근까지 시켜가며 만회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사측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가 된다면 아마 사측으로선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규직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이 깊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하청노동자가 대부분이다. 하청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을 돕고 끈질긴 인내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2천명의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리 작은 하청노동자의 생존권투쟁이라도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은 이것을 통해 정규직에 대한 불신을 걷어버릴 것이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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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도 하청업체의 임금체불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장부 (주)동산의 노동자들은 30% 이상의 임금체불과 연말정산금 미지급 등의 문제로  6월 18일 아침출투와 협력사지원부 앞 농성을 했다. (출처 :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더불어 하청노동자들은 지금껏 보지 못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대오와 과감한 투쟁에 술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보는 것이 자신들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노동조합이 아니라 투쟁으로 결국 승리하는 노동조합이어야 하지 않겠나.

불균등한 현장투쟁

주총 이후에도 현장투쟁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파업 때마다 현장순회는 필수코스였고 공장안 대로를 오토바이로 막는 물류차단 투쟁도 진행됐다. 현장순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변했다. 전기, 가스, 에어를 차단하고 파업불참자들을 직접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전술이었다. 이런 적극성 때문에 최소한 정규직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공장 자체가 멈추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현장투쟁이 모든 지단에서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하청노동자들과 섞여 야드와 도크에서 일하는 곳은 적극적인 투쟁이 쉽지 않았고, 어용과 사측이 장악한 현장은 파업과는 무관할 정도로 다른 세상이었다.

예를 들어 엔진사업부의 경우는 정말 심각한 실정이다. 조합원이 1천여 명이나 되는 큰 곳인데도 파업에 나오는 조합원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하다. 파업지침이 떨어져도 공장은 언제나 정상 가동되고 있으며 같은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른 세상이다. 주로 설계가 중심인 사무직군과 2017년에 분할된 일렉트릭, 건설장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쪽에선 비조합원까지 파업에 참여하는가 하면 한쪽에선 조합원인데도 파업은커녕 잔업에 특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투쟁방향의 전환

시청까지 행진했던 14일 박근태지부장은 마무리 발언을 하면서 “이제부터 대정부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지부는 17일(월)부터 정부가 현대중공업 문제를 직접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천막농성과 1인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주주총회장 점거투쟁 이후 “대정부투쟁”과 “장기전”으로 투쟁방향을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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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지부는 6월 17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출처 : 현대중공업지부 홈페이지)

그런데 투쟁방향이 전환되며 현장투쟁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파업횟수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현장투쟁도 각 지단에만 맡겨지면서 지단별 파업전술과 수위가 제각각이다. 한편으론 각 지단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수위조절에 들어간 파업계획 때문에 그런 자율성조차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게 됐다. 사실상 파업을 보이콧하는 곳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곳을 파업대오 전체의 힘으로 조직하려는 계획은 없어 보인다. 현장투쟁보다는 여론전과 공장을 벗어난 위력시위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장기전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자칫 투쟁수위를 느슨하게 조정해 길게 가겠다는 것이라면 상당한 오판이다. 사실상 자본가들의 편인 법원의 일정에 노동조합의 계획을 맞추는 것은 그때까지 파업대오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데 무엇으로 이를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내가 원하는 곳(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전투를 벌여야 한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원하는 전장이 현장일까 법원일까, 아니면 언론에서의 공방일까?

사측에 시간을 주지 말자

현대중공업 사측은 20일자 인사저널을 통해 총 95명에 대해 고소·고발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는 무작위로 인사위원회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해고라는 1차 중징계를 받은 조합원도 나왔다. 앞에선 대화로 해결하자고 말하고 뒤로는 대거 고소·고발,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인사위원회출석요구서
현대중공업 사측은 징계와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

파업의 기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감히 거부할 수 없는 파업대오의 힘이 매일 현장을 휩쓸고 있을 때는 견책 통보조차 조심스러워 했다. 이제 한번 시작한 공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장기전”이란 방향전환이 사측에 공격할 틈을 줬다. 족히 두세 달은 걸릴 ‘분할무효 청구의 소’와 ‘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등 가처분’ 소송전과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문재인정부에 청원하는 1인시위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조합원들은 충분히 결의되어 있고 언제든 강력한 파업전술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3천명의 파업대오는 지도부에 대한 믿음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이럴 때 사측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최악의 실수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공정한 룰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당하고 확실한 증거만 있으면 저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몰아붙여야 할 때를 놓친다면 나중에 후회하기 쉽다. 이 사회는 오직 힘과 힘의 대결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노동조합의 힘은 쪽수와 강력한 파업투쟁에 있다. 이것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