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돈을 드립니다?!” ― 기본소득이 대안일까?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는 기본소득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3년 전 성남에서 처음 청년배당이 도입된 이후, 서울과 경기도까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이 확대되고 있다.

청년뿐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소득과 상관없이 6세 미만 아동들에게 10만 원씩 아동수당이 지급될 예정이고, 전남 해남군의 경우 올 6월부터 1만5,000가구의 모든 농가들을 대상으로 연간 각 60만 원씩의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의 개념은 간단하다. 묻거나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현금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직업의 유무, 재산의 정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 알래스카의 경우 지역에서 나오는 석유 등의 천연자원 수입으로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연간 1,000~3,000달러를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확대되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가 맞닥뜨린 경제위기, 저성장은 높은 실업을 만들고 있고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렸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던 자유주의가 공황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나서 케인즈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처럼,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새로운 탈출구 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나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기본소득 찬성론자다. 이들은 디지털 경제와 자동화기술의 발달로 노동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분배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가 설립한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도 기본소득 연구와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진보세력들

기본소득론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의 경우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부를 재분배할 수 있어 노동자들의 처지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동시에 자본-임금노동을 뛰어넘어 임노동 관계에 있지 않아도 모든 사람에게 먹고 살 만한 돈을 공동체에서 지급하면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에 비정규직, 실업,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임금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이나 문화예술행위 등에 대해서도 시민권에 입각한 기본소득을 지급해 기존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배계급이 기본소득을 밀고 있는 이유

이재명으로 대표되는 민주당류가 기본소득을 전면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난한 청년, 노동자, 서민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은 자본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들의 지출을 북돋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장들은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이라는 형태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는 당장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매력을 조금 제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보자면,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노동자들이 약간의 밑천을 보장받는 대신, 자본가들은 그런 노동자들을 싼 값에 마음대로 쓰다 버릴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사장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여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보호막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보편적 소득제도는 불안정한 일자리 증대에 대한 보상, 저임금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으로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사회적 완충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기본소득론의 한계

기본소득제도는 왜 한쪽에서는 부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이 쌓이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들이 다수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은 눈감아버린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분배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문제에서 비롯하는데도 말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더 많이 늘리면 노동자계급의 임금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두 계급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무시한다. 대신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함께 나눌 것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를 보면 그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기업의 이윤을 줄이거나 자본가들의 재산을 손대는 것이 아니라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 방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상이 아닌 과학으로 가난을 끝장내자!

기본소득이 분배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겠다는 주장은 공상적 유토피아를 넘어설 수 없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론은 자본주의의 숨통을 연장해주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물질적 풍요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리기 위해선 생산수단을 일부가 독점하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 사적소유를 건드리지 않고 빈부격차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파헤치고 근본적 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맑스주의적 대안만이 가난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

권보연

<노동자의 목소리> 15호, 5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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