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뜨거웠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주총 저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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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저녁, 현중지부조합원들이 한마음회관 옥상에서 “물적분할 박살내자”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다.

5월은 잔인한 달이다. 가정의 달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이 몰려 있지만 5‧18민중항쟁을 비롯해 노동자 민중에겐 피맺힌 달이 5월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특히나 더 그렇다. 2015년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원‧하청노동자를 구분하지 않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2017년은 4사분할로 현장이 쪼개졌고, 2019년 5월 31일엔 물적분할이 시도되며 껍데기 생산기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이 위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더 단단해지고 더 과감해져 그동안 노동자를 무시해왔던 현대중공업 사측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비록 주주총회가 강행 처리되면서 한 국면이 지나갔지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투쟁을 준비 중이다.

10분도 안 돼 통과된 주총

31일 이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던 한마음회관에서는 주주총회가 열리지 않았다. 사측은 한마음회관에서 주주총회를 강행하겠다고 여러 번 밝히며 뒤로는 다른 장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측은 이날 용역과 관리자 500여 명을 한마음회관 정문에 집결시키고 현대중공업의 모든 출입문을 차량을 이용해 봉쇄하는 쇼까지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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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아침, 한마음회관 정문에 하얀색 안전모와 보안경을 쓰고 나타난 현중구사대와 용역깡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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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아침, 현중 사측은 버스를 이용해 정문을 봉쇄했다.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사측과 대치하고 있다.

주주총회가 예정된 시간인 10시를 넘긴 10시 35분경 사측은 확성기와 종이쪼가리를 동원해 11시 10분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시간과 장소를 변경한다는 공지를 했다. 아무리 빨리 이동한다 해도 한마음회관에서는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는 거리였다.

울산대학교 체육관에서 의결권이 있는 72.2%의 주식을 가진 66명의 주주만이 참여한 주주총회는 10분도 안 돼 끝났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달렸지만 울산대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용역과 경찰이 보호하는 텅 빈 체육관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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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체육관에서 사측에 의해 선택된 주주만으로 주주총회를 강행하고 있다.

누군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는데 왜 파업노동자를 배치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잠도 자지 않고 밤새 울산 전역의 예상되는 장소를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노동자들이 울산대학교를 미리 봉쇄했다 해도 또 다른 장소에서 주주총회를 강행했을 것이다.

한몸이 된 법원, 경찰, 사측

‘주주총회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27일)과 강제퇴거를 허가한 ‘부동산명도단행 가처분 신청’(30일)을 받아들인 법원, 전국에서 불러들인 4천여 명의 경찰, 1천여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한 현대중공업 사측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했다.

결정적인 시기에 특히나 노동자들의 거대한 단결과 투쟁이 높이 치솟을 때 이 자본주의 국가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현대중공업 주주총회는 확실히 보여줬다. 아무리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근거를 들이댄다 해도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을 숨길 수 없다. 겉으로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척하지만 결국 저들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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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중 사측의 요청으로 울산대학교 체육관(변경된 주총장소)을 보호하는 경찰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신종수단인 지주사 설립과 물적분할은 재벌의 경영권 유지와 승계를 위한 합법적 방법이다. 노무현정권 시절부터 권장된 이 방법은 최근 들어 재벌들이 애용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아주 적은 주식만으로도 지배력을 전혀 잃지 않고, 그룹사의 연쇄부실을 피하면서도, 부를 더 쉽게 대물림할 수 있는 방법을 마다할 리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원은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사유재산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공권력도 노동자민중의 안전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노동자는 빵 하나를 훔쳐도 구속되지만 수백억, 수천억을 횡령해도 여전히 회장이자 사장인 자본가들은 구속도 거의 안 되고 설령 된다 해도 쉽게 석방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것이 이 사회의 본 모습이다.

하자 투성이 주총결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4박5일간의 주주총회장 점거투쟁을 감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물적분할 주주총회를 막진 못했다. 물론, 사측이 너무나 무리하게 강행했기에 여전히 법적 다툼은 남아 있다. 쥐새끼마냥 노동자들이 봉쇄한 주총장을 피해 기습적으로 처리한 물적분할은 최소한의 법적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현대중공업 사측의 손을 거들어줬던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분명 하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을 믿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법관들의 판결은 언제나 사회적 힘 관계를 반영해왔다. 법원은 노동자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할 때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노동자의 편을 드는 척한다. 거대한 촛불의 힘을 잠재우기 위해 박근혜와 그 공범자들을 구속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법이 변하지 않는 절대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누구의 힘이 강한가에 따라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자 투성이 주총결과의 법적 다툼도 노동자의 투쟁 없이는 사측에게 유리할 뿐이다.

투사로 거듭난 노동자

법원, 경찰, 현대중공업 사측이 ‘단결’해 성공한 주총으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모두 끝났는가? “이제 끝이구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최소한 4박5일간의 점거투쟁을 함께한 노동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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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치는 월요일부터 새벽의 추위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동고동락했던 ‘동지’들은 이전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사측의 도발 낌새에 비상이 걸리면 몇 분도 안 돼 맡은 바 역할을 수행했다.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눈은 결의로 빛났고 목소리는 차가운 밤공기를 갈라놓을 정도로 우렁찼다. 사측 경비대의 장난질로 밤새 서너 번의 비상이 걸렸지만 누구 하나 짜증내는 사람 없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0년 골리앗투쟁의 선봉에 섰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이미 세대가 교체됐다. 이런 투쟁을 해본 노동자는 극소수의 선배들뿐이었다. 즉,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생 처음으로 이런 엄청난 투쟁을 해본 것이다. 그것도 사측과 경찰, 법원의 온갖 협박을 뚫고서 말이다.

노동자들의 변화는 한마음회관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 확실히 확인됐다. “월요일 지침은 8시간 전면파업입니다”는 지도부의 말에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주총이 통과되고 막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사기가 떨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한 투쟁이 필요함을 직감적으로 느낀 노동자들의 마음은 그 환호 속에 충분히 녹아 있었다.

더 높은 투쟁으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한 투쟁으로 주총장 점거투쟁기간 내줬던 현장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 이미 간헐적으로 생산을 중단시켰던 현장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여 실질적인 파업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4박5일의 주총 저지투쟁에 하청노동자들도 있었다. 규모에 비하면 아주 소수였지만 그들은 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했다. 그동안 현대중공업지부가 보여줬던 성실하고 진정한 연대를 경험한 하청노동자들이다. 아직도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반대로 함께 싸워야 한다는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는 하청노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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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수지만 하청노동자들도 노란조끼를 입고 주총저지투쟁에 함께 했다.

이것이 현대중공업 현장의 변화다. 비록 지금은 미약하지만 1년 전만 돌아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임을 알고 있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겐 충분히 의미 있다. 현대중공업 원‧하청노동자들은 충분히 함께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자본가들의 구조조정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던 한국의 수많은 대사업장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변화와 투쟁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긴급지침만으로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현장으로 달려왔고 현대차지부조차 농성장 침탈 시 전면총파업을 결의하지 않았나. 이런 힘이 있었기에 현대중공업 사측과 경찰은 감히 한마음회관을 점거한 노동자들을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고 더욱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자. 주총장 점거로 현대중공업 사측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 투쟁의 힘을 이제 현장으로 돌리자.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은 모든 노동자의 귀감이 될 것이며 전국적 연대투쟁의 불을 지필 것이다.

윤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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