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거대한 분노가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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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대우조선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언제나 정규직 조합원들로 채워졌던 민주광장이 2,500여 명의 하청노동자들로 꽉 채워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리를 채운 하청노동자들 스스로도 놀랐고 이를 지켜보는 대우조선 사측도 놀랐다.

무엇이 이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했나!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케 했나! 너무나 억눌려 왔고 스스로의 권리조차 지키지 못했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2019년 봄에 드디어 거대하게 깨어나고 있다.

약속을 어긴 대우조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분노가 이렇게까지 드러나게 한 직접적 원인은 대우조선지회(정규직)의 2018년 단협에서 약속한 성과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성과보상금은 2018년도 실적을 반영해 3, 4월경에 지급하기로 약속했지만 4월 26일 정규직노동자에게만 지급됐다.

대우조선 사측은 아직 인원 정리가 안 돼 지급하지 않았고 30일까지는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우조선지회는 5월 2일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 경영관리단(이하 경영관리단)을 찾아갔으나 단장은 휴가를 떠나버리고 없었다. 실무자로부터는 성과금을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할 경우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방법을 강구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2018년 1조 원대의 영업이익이라는 실적을 낸 대우조선 사측이 성과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소식은 하청노동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청노동자들은 상여금 550%를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명목임금조차 줄어들었다. 물가인상률 등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 곧 지급될 것이라고 믿고 있던 성과금이 들어오지 않으니 하청노동자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모이자! 5월 10일

신상기 대우조선지회장과 김동성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장은 4월 30일 성과금 미지급문제를 공동대응하기로 약속했다. 대우조선지회는 5월 2일 투쟁속보 42호에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려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도 신속히 움직였다. 2일(목)과 3일(금) 중식 식당 선동투쟁에서부터 대우조선이 성과금을 안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주말 집행부회의를 거쳐 5월 10일(금)을 1차 하청노동자 총궐기의 날로 정했다. 6일(월)부터는 2개 팀으로 나눠 더 많은 식당을 찾아갔다. 물론 출근투쟁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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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자! 5월 10일 PDC#1 광장으로”, “성과금 안 준답니다! ㅅㅂ 함 모입시다!”, “대우조선 모든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금을!” 하청노동자의 분노를 담은 선동과 구호가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청노동자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팔뚝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하청노동자가 곳곳에 있었다. 정규직노동자들조차 “왜 성과금을 안 주노, 가만있지 마라”며 하청노동자들을 응원했다. 공감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건네는 하청노동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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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광장의 주인공이 된 하청노동자

12시도 되기 전에 민주광장(PDC#1 광장)에는 하청노동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고자 신분으로 현장출입을 하지 못했던 김동성 거통고조선하청지회장도 그 자리에 당당히 서 있었다. 서둘러 광장으로 모여드는 하청노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머리띠를 받아 질끈 동여맸다. 노무관리자 중 하나가 시비를 걸긴 했으나 금세 사라졌다. 하청노동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한 1,000개의 머리띠와 깔개는 금세 동이 났다. 하청노동자들은 깔개도 없이 자리를 찾아 민주광장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날 처음으로 ‘데모’라는 것을 해보는 하청노동자들이 대다수였다. 언제나 정규직노동자들의 집회와 파업을 지켜보기만 했던 이들이 이날은 주인공이었다. 너무나 감동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와 열을 딱딱 맞추고, 힘차게 팔뚝을 치켜들어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는 하청노동자 2,500여 명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잘 훈련된 군대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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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몇 명이나 모일지 장담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300명? 500명? 반신반의하며 일주일간 목이 터져라 “한번 모여서 하청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자”고 외쳤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은 하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청노동자들이 언제까지나 노예처럼 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현실이 됐다.

본관 항의방문

민주광장에서 집회한 뒤 본관을 향해 행진했다. 성과금 미지급의 책임이 있는 원청 대우조선해양 사측에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본관 앞에서 간단하게 집회한 후 대우조선지회 정책실장, 웰리브지회장, 거통고조선하청지회장이 요구안을 전달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고 대표자들만 나선 건 아니다. 본관 앞까지 함께 왔던 모든 하청노동자들이 본관으로 쳐들어갔다. “성과금 내놔라!”, “모든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라”, “우리의 피와 땀을 내놔라”는 구호가 본관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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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하청노동자가 본관에 쳐들어와 집단항의를 하다니! 어떤 관리자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 하청노동자는 “인사담당 관리자의 표정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들에게 하청노동자는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었을 것이다. 아니, 말 잘 듣는 노예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요구안은 분명했다. 대우조선 내 모든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할 것, 5월 14일까지 지급하지 않을 시 하청노동자의 커다란 분노와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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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지회의 단협합의에는 성과금 지급 대상이 상용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본공만이 아니라 일당제 노동자,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모든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 얼마나 정당한 요구인가.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놀랄 만한 움직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급식, 수송, 매점, 목욕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설립한 웰리브지회가 불과 4개월 만인 작년 9월에 두 차례나 파업했다. 빨간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두른 여성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전면파업까지 불사하며 사측의 임금삭감 시도를 막고 노동조합을 인정받았다. 올해 2월 말, 3월 초에는 파워노동자 300여 명이 일당 2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2주간 파업 아닌 파업을 벌였다. 파워노동자들은 당당히 집회를 하고 야드를 행진하며 지속적인 작업거부를 이어갔다.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가 이렇게 모이고 투쟁한 것은 대우조선에선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파워노동자들은 결국 일당 2만 원을 인상시켰다. 웰리브노동자들과 파워노동자들의 투쟁을 대우조선 모든 하청노동자들이 지켜봤다.

어디 거제뿐인가. 4월에는 울산에서 하청노동자의 투쟁이 솟아올랐다. 작년부터 두 달에 한 번꼴로 반복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리던 현대중공업 건조부 하청노동자들이 결국 폭발한 것이다. 2,000여 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가 임금체불에 영향을 받았고 가장 심각한 두 개 업체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싸웠다. 이 투쟁으로 체불된 임금도 받고 거의 일하지 못했던 4월도 유급휴무로 임금을 보전받았다. 폐업한 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은 당연히 승계됐다.

거제와 울산의 하청노동자들은 서로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거제에서 시작된 불길은 울산으로 번졌고 울산에서 타오른 불꽃은 다시 거제로 옮겨붙어 더욱 거세졌다.

이제는 지역을 넘어 거대한 들불로

대우조선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분명 대우조선 사측에 14일까지 성과금을 지급하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2차 하청노동자 총궐기로 대응할 계획이다. 하청노동자들은 더 이상 인내할 생각이 없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당했고 이미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거통고하청지회 성과금요구 공문

성과금을 받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다음은 임금인상, 상여금 원상회복이 하청노동자들의 요구가 될 것이다. 이 요구는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와도 같다. 이미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25% 임금인상을 목표로 조직하고 있다.

지역을 넘어 거제와 울산의 하청노동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 얼마나 계급적인 본능인가. 언젠가는 두 지역의 하청노동자들이 아니 정규직노동자까지 함께 모이는 거대한 투쟁이 이뤄지길 바란다.  따뜻한 봄바람처럼 멀리 거제에서 불어온 노동자투쟁의 불꽃 바람을 모두 함께 지지하고 응원하자!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