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대중공업 대규모 임금체불, 폭발해버린 하청노동자들의 분노


현대중공업 대규모 임금체불, 폭발해버린 하청노동자들의 분노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건조1부와 5부, 도장부 업체들이 2월 임금에 이어 3월 임금도 체불했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은 2월 임금을 받아야 하는 3월에는 참고 넘어갔지만 두 달째 임금체불이 이어지자 더 이상은 참지 않았다.

4월 12일 아침, 누구의 지시도 아닌 스스로의 결의로 시작된 현중하청노동자들의 직접행동(출근투쟁)은 서서히 몸집을 키우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상습적 임금체불

건조1부와 5부, 도장부의 임금체불은 이번에 처음 발생한 일이 아니다. 작년 6월부터 임금체불은 수시로 반복됐다. 8월, 10월, 12월 임금도 체불됐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이다. 업체장들은 원청으로부터 지급되는 기성금이 터무니없이 적다며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 30~50%를 체불했다.

고통은 고스란히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업체장들은 원청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기성금을 더 받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을 2~3일씩 무급휴직 보내며 작업거부를 반복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임금도 체불되고 불법적인 무급휴직으로 임금 자체도 줄어드는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이때마다 업체장들은 하청노동자들에게 다음 달에는,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라며 ‘희망고문’을 반복했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는 작은 희망을 품으며 열심히 일해 온 하청노동자들을 원청과 하청업체가 이용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임금체불은 이전에도 있어왔던 일이다. 조선산업 불황으로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폐업했고 3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임금도 떼이고 퇴직금도 떼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약간 다르다. 물량은 늘어나고 있다. 작년부터 하청노동자 고용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내업을 비롯한 3도크 쪽은 그나마 임금체불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임금체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곳은 1, 2, 8, 9도크의 건조1부, 5부, 도장 쪽이다. 특히, 건조1부와 5부 8개 업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8일부터 임금체불로 집단작업거부에 들어간 하청노동자가 2천여 명에 달한다. 현재는 임금이 급여일에서 일주일이 지나서 일부, 열흘 만에 나머지가 입금되면서 대부분 작업에 복귀했지만 아직까지도 약 3백여 명의 임금 9억 3천여만 원(현중사내하청지회 집계) 정도가 체불 중이다.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곳은 대부분 폴라리스 쉬핑사가 발주한 초대형 광석운반선(VLOC)을 작업하고 있다. 2017년부터 총 18척이 발주됐는데 현재까지 3척이 인도됐고 아직도 15척이 남았다. 그런데 이 배들은 상당한 저가수주였음이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은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하청업체들은 또다시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내년까지 지속될 임금체불

현재의 임금체불 문제는 내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 폴라리스 쉬핑사의 VLOC가 내년까지 계속 건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청은 임금체불에 대해 하청업체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라곤 다음달 기성금을 미리 지급하는 것과 상생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원청에서 업체당 1억~2억 원을 대출해주는 것뿐이다.

결국, 임금체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업체장들 입장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그리고 적자에 시달리는 업체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있다. 이번에도 벌써 두개 업체가 원청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업체들이 그대로 폐업하게 된다면 소속노동자들은 체불된 임금을 받기는커녕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뭉치는 하청노동자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리던 하청노동자들은 계속 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임금지급일 하루 전인 4월 9일 업체들이 또다시 임금 체불을 공식화하자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미 임금체불에 대한 현장의 불만이 커지면서 하루 전부터 2천여 명이 자발적인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3월에 개설된 오픈채팅방엔 하청노동자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이들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결의하는 데까지 나갔다. 그렇게 4월 12일 금요일 첫 아침 출근투쟁이 성사됐다.

첫 출투에는 50여 명이 모였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자 두 배가 넘는 노동자들이 동참했다. 화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점심시간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카메라 앞에선 하청노동자는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쏟아냈다. 하청노동자의 부인은 현대중공업을 향해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안 주고 덜 준 돈 이자까지 쳐서 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안 주냐”며 일갈했다.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현중하청지회

오픈채팅방엔 임금체불 문제로 5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모여 있다. 한 달도 안 돼 이렇게 많은 하청노동자가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직접행동까지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은 현중하청지회의 역할이 컸다.

2004년 박일수 열사의 장례를 치른 후 집단 가입했던 100여 명의 파워노동자 이후 현중하청지회가 이 정도 규모의 하청노동자와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중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들이 그동안 받은 설움과 켜켜이 쌓인 분노를 터트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모든 실무준비를 해냈다. 현중지부도 원하청 관리자들의 감시사찰을 막는 등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계획적으로 업체를 폐업시키거나 블랙리스트로 취업을 막는 등 하청노동자가 조금이라도 조직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을 막아왔다. 덕분에 ‘노조하면 업체 망하고 신세 조진다’는 선입견이 하청노동자들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하청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년간 수없이 패배와 승리를 번갈아가며 끈질기게 하청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현중하청지회가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책임

이번처럼 몇 개 부서에 집중된 대규모 임금체불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원청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정몽준, 정기선 부자는 작년 실적 배당으로 836억 원이나 받아갔다.

폴라리스 쉬핑사가 발주한 배들은 철광석을 운반하는 벌크선인데도 시추선과 같은 품질을 요구하고 있다. 선주사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수차례의 추가 작업이 이뤄진다. 그런데도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계속해서 턱없이 부족한 기성금으로 작업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상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며 작업해야 하는 선시공 후계약인데도 현대중공업은 계약대로 지급하고 있다는 뻔뻔한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불은 붙었다. 하청노동자에게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대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하청노동자들은 스스로의 힘을 확인하며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