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백범_김구_기념관에_앉아_있는_문재인사진_출처_연합뉴스.jpg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크게 강조해 왔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기억하고, 계승하려고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랑정부

3.1 만세운동 형태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진 거대한 항일의지를 확인한 항일세력들은 임시정부를 구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상해에 본부를 두기로 했다.
임시정부는 명목상으로 보면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국이었다.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약칭 한국이라 불렀다. 초기에는 이념적으로 약간 개방적이어서 민족주의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와 국민을 갖지 못한 유랑정부인 데다가 이후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분열되고 약해져 제한적 기능조차 잃어버렸다.
임시정부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승만 사건이다. 임시정부는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미국 정부한테 일본 대신 한국을 지배해 달라고 청원했다. 신채호 말대로,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도 팔아먹은” 셈이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자 탄핵당한 첫 대통령이 됐다.

대리주의

임시정부 안에서 잃어버린 나라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격하게 벌어진다.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외교독립론이 득세했다. 임시정부가 오랫동안 상해에 머물렀던 것은 상해가 제국주의 열강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에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식민지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열강이 도와줄 리는 없었다.
노동자계급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민족해방도 식민지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한다. 열강에 의존하는 대리주의 외교독립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 테러 전술은 또 다른 형태의 대리주의다. 1930년대 김구 임시정부의 업적이라고 칭송받는 것 중에는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이 있다. 침략의 원흉들을 죽이고 병신으로 만든 것이 죄가 될 순 없지만, 그런 방식으론 노동자해방은 물론 민족해방도 쟁취할 수 없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권총 무장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계급투쟁을 위해 노력하겠는가? 엄청난 폭발로 고위 인사들을 위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당이 필요하겠는가? 집회, 대중 선동, 선거가 왜 필요하겠는가?”
김원봉도 개인적 테러전술을 주로 구사했던 의열단을 해체하고,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보다 대중적인 혁명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렇듯 개인적 테러전술은 노동자계급의 무기가 될 수 없다.

기억의 전쟁

1923년 국민대표회의의 갈등을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몇몇 세력이 떠난 뒤, 남아 있던 김구 중심의 임시정부는 “조선 인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인민 속에 토대도 갖지 못했던” 떠돌이 정치브로커들의 정부였다. 1940년에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하지만, 훈련만 하다가 총 한 발 못 쏘고 해방을 맞았다.
일제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가장 끝까지 싸웠던 것은 원산총파업이나 이재유의 경성트로이카 활동 등에서 드러나듯 노동자계급 속에서 분투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전의 모든 자본가정부처럼 문재인 정부도, 이런 일제하 저항운동의 본령을 꼭꼭 감추기 위해 껍데기 임시정부를 찬란하게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역사의 기억은 매우 계급적이고 매우 전투적이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