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노동자의 눈으로 역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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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사활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지배하기 위한 ‘기억의 전쟁’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친일 전통 = 자유한국당’, ‘항일 전통 = 민주당’의 이미지를 퍼뜨려 지지기반을 강화하고, 이를 발판으로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공격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자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3.1운동의 배경 – 1917년 10월혁명

자본가계급이나 중간계급 지식인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 선언이 3.1운동의 배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적 배경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이다. 10월혁명으로 등장한 러시아 노동자권력은 민족자결권을 선포하고, 모든 러시아 식민지의 자결권을 즉시 보장했다. 이것은 전 세계 피억압민족을 크게 고무했다. 그래서 선진국의 노동자혁명과 식민지의 민족해방혁명 투쟁이 결합해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윌슨은 민족자결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 같은 패전국의 식민지에 대해서만 자결권을 보장한다는 철저히 기만적인 선언이었다.

참으로 용맹스런 노동자들

이른바 민족대표 33인은 매우 나약한 중간계급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일제보다 대중투쟁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태화관에 숨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일제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은 대담하게 싸웠다. 3월 1일 정오에 수천 명의 군중이 탑골공원에 모여 만세를 불렀다. 노동자도 파업, 시위에 적극 나섰다. 가령, 3월 3일 겸이포제철소에서는 노동자 200여 명이 반일시위를 벌였고, 3월 7일 경성 동아연초공장에서는 500여 명이 파업했다. 나중에 조선공산당 당수가 된 용산기관차 화부 차금봉은 3월 27일 철도노동자 800여 명을 조직해 파업을 벌였다. 일제가 평화시위를 총칼로 잔인하게 짓밟자, 3월 27일 직산 금광노동자 100여 명이 일본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조선인들도 점차 무력으로 맞섰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7, 8월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8월 18일 경성 전기노동자들의 파업은 경성시내를 암흑천지로 만들고 전차운행을 중단시키는 등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공산주의가 빠르게 퍼져나가다

3.1운동을 계기로 공산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4월 초까지 계속된 만세운동으로 5,700여 명이 죽고 25,000여 명이 크게 다치는 모습을 본 청년들은 보다 강력한 혁명투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열강은 식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러시아 노동자권력만이 사심 없이 식민지 해방운동을 도와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레닌은 국제적인 혁명투쟁으로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배후에서 뒤흔들기 위해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트로츠키도 이렇게 주장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 노예들이여! 유럽에 노동자계급 독재가 나타나는 시간이 곧 여러분이 해방되는 시간일 것이다.”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맑스와 레닌의 혁명사상을 빨아들인 젊은 혁명가들은 1925년에 조선공산당을 창건했다. 일제 말기까지 최소 3만 명에 이르는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합하면 6만 명에 이르는 감옥살이까지 감수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민족독립은 물론 노동자세상 건설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웠다. 따라서 지금 노동자들이 제대로 알고,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은 일제하 노동자계급 혁명운동이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