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대중공업, 잠정합의 부결투쟁으로 드러난 저력


연내 타결과 잠정합의

작년 12월 27일 현중지부는 1차 잠정합의를 했다. 하지만 너무나 함량미달이었던 이 합의는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측에 ‘문구수정’을 요구하는 재협상 대상이 돼버렸다.
지도부가 1차 잠정합의를 재협상하기로 한 건 공식적으론 ‘간사회의록’ 2번항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은 사업 분할, 지주사 전환(R&D센터 건립 포함), 오일뱅크 사업 운영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그동안 현중지부에서 수없이 제기했던 의혹과 교묘한 3세 승계문제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이 문구만이 아니라 잠정합의 전체에 숨겨진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폭발해버린 현장의 분노

문구수정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측으로선 얻을 건 다 얻은 합의였기 때문이다. 사업 분할, 지주사 전환, 오일뱅크에 대한 문제 제기에 재갈을 물렸고, 가장 중요했던 부당노동행위에도 면죄부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한 노사합의서”란 이름으로 노사화합선언을 하겠다는 약속은 물론 위법한 노조 활동에 대해 노동조합 스스로 조합원을 징계한다는 문구까지 넣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어디 이뿐인가, 1사1노조를 만들고도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개선시키지 않아 또다시 ‘이용당했다’는 하청노동자들의 원성을 스스로 자초했다.
현장의 분노는 12월 31일 기명유인물로 표현되었다. 활동가 98명의 이름으로 나간 기명유인물은 현장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다. 기명하려는 조합원이 너무 많아 활동가만 추렸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현장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문구만 바뀐 2차 잠정합의안

버티기로 일관하던 사측도 현장의 정서에 밀려 결국 ‘문구수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잠정합의를 완전 폐기하고 새로운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니 손해 보는 일도 아니었다. 1월 7일 공개된 수정안은 이를 증명했다.
지도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간사회의록은 폐기했지만 핵심 내용은 고스란히 ‘계승’한 2차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심지어 1차 잠정합의에서 희망퇴직, 분사, 아웃소싱을 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고용을 보장한다’로 수정하며 분사와 아웃소싱의 명분만 살려줬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여전히 사측에 면죄부를 줘버렸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다행히 조합원들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반발은 더 커졌다. 1월 10일 2차 기명부결유인물엔 129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어용의 준동과 현장의 성장

1, 2차 잠정합의는 현장을 혼란스럽게 한 듯하다. 어용들은 혼란을 틈타 지속적으로 유인물을 내며 노동조합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되었다. 노동조합의 단결이 깨지며 위기에 처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일면일 뿐이다. KBS의 폭로로 눈앞에 증거가 드러나자 잠잠했던 어용들이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어용이 아닌 척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주장해도 조합원들은 속아 넘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라는 이름으로 가려졌던 합법주의와 노사협조주의 허울이 벗겨지며 조합원들의 눈이 밝아지고 있다.
작년 1월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7명이 기명부결유인물을 냈고 1차 잠정합의를 무력화시켰다. 비록 상여금분할은 막지 못했지만 유연근무제를 막아내고 1명의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그 6~7배의 활동가가 이름을 걸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어설픈 눈 가리기는 조합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조합원들이 성장했다. 조합원들은 누가 진정 노동자의 단결과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깨어나고 단련된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은 현중지부의 미래를 책임질 튼튼한 버팀목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