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체육계 미투, 이 사회의 모습을 비추다


금메달리스트의 처절한 폭로

지난 8일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가 조재범으로부터 상습적인 (성)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스런 세월을 견뎌냈던 훌륭한 선수는 가려진 장막 뒤에서 벌어진 일을 이제야 털어놓았다.
처절한 용기를 내야만 했던 이 빙상선수의 폭로를 시작으로 그동안 감춰져왔던 체육계 전체의 추악한 진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대학진학, 대회출전권, 선수 생활 이후의 생계까지 좌지우지했던 절대권력자들이 수시로 어린 선수들을 (성)폭력으로 지배해왔다는 비밀 아닌 비밀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엘리트체육의 결과

‘금메달만 따면 다른 것은 상관없다, 무조건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엘리트체육의 절대적 목표는 이처럼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오직 금메달만을 목표로 훈련하고 길들여진 선수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폭력에 맞설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많은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를 지배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물리적 폭력과 함께 성추행·성폭력을 사용해왔다. 설령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체육계 카르텔은 서로가 서로를 비호하며 없던 일로 만들어 왔다.
승부조작으로 실형까지 받아 지도자의 자격이 없었던 조재범이 국가대표 코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었던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수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빙상계의 온갖 부정부패와 끝이지 않는 (성)폭력 문제의 몸통으로 지목된 전명규는 그동안 금메달제조기라는 별칭을 얻으며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들만의 카르텔

빙상계 미투가 터지면서 대한체육회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문체부가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10년 전에도, 4년 전에도 내놨던

재탕에 불과하다.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고 범죄자 집단에게 범죄자를 처분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 리 없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폭력이나 성폭력과 관련돼서 징계를 받았던 체육계 지도자들의 37% 정도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선수생활 그만하고 싶냐, 여기서 그만두면 갈수 있는 곳 없다’는 협박을 받으며 고통받을 때, 가해자들은 면죄부를 받고 죄의식도 없이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
체육계 카르텔은 방대하다. 빙상협회장은 삼성 제일모직의 김재열상무가 맡고 있다. 카르텔의 꼭대기에 있는 대한체육회 이기흥회장은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전직 정부 고위관료들을 위원으로 앉혔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드러난 체육계의 실상은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돈 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지배하는 이 세상 그 자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법적 권리를 주장해도 해고와 손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노동자, 반면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산재사고가 나도 몇 천만 원의 벌금으로 퉁칠 수 있는 자본가,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질러도 무죄이거나 특사로 조기 석방되는 정치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체육계 카르텔과 이 사회의 지배카르텔은 너무나 닮아 있다. 용기를 내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온갖 차별과 착취에도 기어코 단결하고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들과 닮아 있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