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새해에도 지속되는 ‘노란 조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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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려 왔던 자들의 목소리

1월 12일(토) 9주차 시위에 정부 추산으로 파리 8,000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84,000명이 참여했다. 12월 29일(토) 3만 2,000명, 1월 5일(토) 50,000명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비록 한계가 있을지라도 노란조끼 시위는 분노가 깊었던 프랑스 대중이 억눌려 왔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1월 6일 일요일엔 여성 노란조끼 시위가 전국에서 열렸는데, 툴루즈의 여성들은 ‘불안정하고, 차별받고, 저항적인 여성들이 앞장선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했다. “남자는 반란을 일으키지만, 여자는 혁명을 일으킨다”고 대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한편 마크롱은 노란조끼 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2개월간의 ‘사회적 대토론’ 쇼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주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1년 전에 폐지한 부유세는 복원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노란 조끼 시위대가 토론장에 들어가는 것은 최루탄을 쏘면서까지 막았다. 결국, 마크롱의 ‘사회적 대토론’이란 ‘사회적 대탄압을 위한 가리개’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해고하고,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대토론 따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차없이 노동자를 공격한다. 결국 현대 사회의 왕으로 군림하는 이 자본가들의 독재에 맞서려면 노동자들은 ‘대토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대투쟁에 의지해야 한다.

깨닫고 행동하기 시작한 대중

대중운동의 본질은(그것이 아무리 제한적일지라도) 이전에는 추상적이었던, 심지어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노란조끼 운동의 가장 큰 의의는 그 존재 자체에 있다. 피억압 계급의 행동 가능성에 대해 오랫동안 체념과 회의가 있었지만, 가장 억눌리고, 가장 소외당하고, 가장 파편화된 층의 일부가 폭발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견과 환상, 미조직 상태와 비정치적 태도를 유지한 채 시위에 참가했다. 그들에겐 나침반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떨쳐나섰다. 시위에 참가한 것 자체가 그들에게 훈련의 시작이다. 새로운 소통방식, 새로운 조직형태가 등장했다. 고립된 채 힘겹게 살던 여성과 남성, 노인이 함께 대화하고 함께 투쟁하며 자신들의 불행이 개인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혁명적 투사는 이런 깨달음을 돕고, 다음 발걸음을 예측해야 한다. 맑스주의 사상과 혁명강령을 이해하고 그것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중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분노가 현장으로 확산돼야

프랑스의 혁명적 노동자조직 LO[노동자투쟁]는 최근 성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정당하게도, 많은 사람이 마크롱 대통령과 그 부자 정부가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아챘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대자본가들의 독재에 맞서는 것도 정당하며, 그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이다.
2018년 말에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2019년에 그런 분노와 투쟁이 현장으로 확산돼야 한다. 노동자들에겐 투쟁과 파업을 통해 자본가들을 물러서게 만들 힘이 있다. 우리는 임금 인상, 연금 인상, 사회보장 확대 등을 위해 투쟁할 수 있다. 우리는 전체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을 관철시킬 수 있다. 우리는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끌고 가는 이 경제체제를 타도할 수 있다.”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