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


① 마르크스 철학은 왜 노동자의 철학인가?
② 노동자계급 혁명가, 마르크스의 삶과 투쟁
③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공산당 선언>
④ 노동자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 문재인 자본가정부 대 노동자정부 파리꼬뮨
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⑥ “노동자해방은 노동자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⑦ <자본> 1 –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 잉여가치
⑧ <자본> 2 – “자본주의는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⑨ <자본> 3 – “한쪽에는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는 빈곤의 축적”
⑩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

1848년 초에 나온 <공산당선언>이 50년도 안 돼 가장 의식적인 세계 노동자투사들의 깃발이 됐을 정도로, 마르크스의 사상은 당대에도 올바름을 훌륭하게 입증받았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더욱 올바르다. 왜냐면 오늘날엔 자본주의가 세계 곳곳으로 더 확장됐고, 자본주의 모순이 훨씬 더 첨예해졌으며, 세계 노동자계급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혁명적 잠재력 또한 그만큼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규모

현재 한국 노동자계급이 2,000만 명이 조금 안 된다고 치더라도, 마르크스 시대의 세계 노동자계급보다 더 많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는 한국 노동자계급보다 최소 20배 이상 규모의 노동자계급이 있다. 무려 16명의 노동자가 연쇄자살해 악명이 높아진, 중국의 아이폰 제조공장 팍스콘에서만 100만 명이 일해 왔다. 팍스콘 회장은 “매일 100만 명의 동물을 관리하느라 골치 아파 죽을 지경이다”며 망언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성

노동자계급의 규모가 크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이라는 점은 훨씬 더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관리해야 할 동물’로 취급하고, 나약한 중간계급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을 ‘고통받는 계급’으로만 간주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 등에서 여러 차례 말한 대로 자신의 당면한 권리를 위해 힘차게 투쟁할 수 있는 계급이자 착취의 쇠사슬을 싹둑 끊어버릴 수 있는 혁명적 계급이다.

“총공회[노동조합총연맹]는 1927년 3월 21일 정오에 총파업 돌입과 동시에 봉기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발표했다. … 파업은 완벽했다. 실제로 상하이의 모든 노동자가 거리로 나왔다. … 50~8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직접 참가했다. … 자베이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은 날이 저물기 전에 경찰서와 지역 군사기관을 제압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중국혁명의 비극>에서)

이런 투쟁이 벌어졌던 90년 전쯤의 1,000만 중국 노동자가 이토록 혁명적이었다면, 수십 배로 규모가 늘어났으며 극심해진 자본주의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 노동자계급은 틀림없이 세계가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혁명적 잠재력을 수백 배 규모로 갖고 있을 것이다.

노동자혁명은 반드시 다가올 미래

코앞에 닥친 자기 문제만 바라보며 산다면, 노동자혁명이란 아득한 과거의 얘기일 뿐이고, 사회주의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상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삶을 하루하루 심각하게 위협하는 실업, 빈곤, 산재, 환경재앙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사회주의 말고 있는가? 그리고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는 길이 노동자혁명 말고 있는가?
결국 노동자혁명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폭발할 때 등장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적 미래다. 하지만 노동자혁명이 싹부터 잘리고 사회가 파시즘이나 3차대전 같은 야만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위력적으로 등장하고 기필코 승리할지는 오늘날 노동자계급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전투 구호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맑스주의를 배우자, 알리자, 싸우자!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