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누구보다 높이 날았던 독수리, 로자 룩셈부르크


2019년 1월 15일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뛰어난 혁명가가 살해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기회주의에 맞서 투쟁하다

독일 사민당의 핵심 지도자였던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통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마르크스의 내용을 교묘하게 수정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 있고, 의회진출이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로자는 「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는 글을 통해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공상일 뿐이라며 비판했다. 로자는 자본주의는 여전히 위기로 내몰리고 있고, 노동자계급의 능동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반대를 외쳐왔던 독일사민당이 입장을 바꿔 전쟁공채 발행을 찬성했다. 제2인터내셔널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독일 사민당의 배신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에 로자는 의회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칼 리프크네히트 등의 동지들과 함께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명확하게 내걸고 투쟁에 나섰다. 노동자들이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 전쟁을 계급 대 계급의 내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반전투쟁에 앞장선 것이다. 그 결과 로자는 전쟁기간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독일사민당의 잘못된 결정에 분명히 반대했기에,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전쟁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을 때 나침반이 될 수 있었다.

대중을 무한히 신뢰하며
독일 혁명의 전망을 밝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을 경험한 로자는 「대중파업론」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대중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어떻게 혁명을 전진시키는지, 혁명적 상황이 되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 어떻게 통일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더불어 대중을 핑계 삼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사민당 주류의 기회주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비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파르타쿠스동맹, 독일공산당 등을 조직하면서 독일에서 혁명을 일구어내기 위한 선전과 선동, 조직화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독일혁명은 실패했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이론과 대중의 자발성과 능동성에 기초한 대중투쟁에 대한 전망은 혁명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독수리, 날개를 꺾이다

여성, 유대인, 장애인, 외국인 등 평생을 꼬리처럼 따라다니던 다양한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서 오로지 혁명가라는 이름 하나로 두려움 없이 평생을 살았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결국 자본가정부의 관료가 된 사민당 지도자들한테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죽였어도 해방을 고대하는 노동자계급의 불꽃은 결코 꺼뜨릴 수 없었다. 그녀가 뿌렸던 혁명의 씨앗은 노동자계급의 가슴속에 살아 언젠가 맞이할 자본주의 최후 무대에서 찬란하게 꽃필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 변혁이냐 아니면 야만이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승리와 고대 로마처럼 모든 문화의 쇠퇴, 즉 파괴, 황폐화, 퇴보, 입 벌린 무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 방책인 전쟁을 의식적으로 공격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승리를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세계사적 선택의 기로다. 주사위는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가 던질 것이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