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번역]쇠퇴하는 제국주의의 혼돈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현재와 미래 투쟁 강령


현재 여러 가지 사건들이 혼돈스러운 세계정세 속에서 근본적이고 유기적인 연관을 갖고 벌어지고 있다. 경제와 국제 관계,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정치적 진화, 그리고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바다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 활동이 만들어낸 환경적 재앙에 대처하는 데서의 인간 자신의 무능력 등등 이 모든 문제들은 서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면성을 가진 이 사건들은 모두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현재적 위기의 표현이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 경제의 출발과 함께 그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던 위기이며,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일정한 법칙성을 갖고 규칙적으로 발생해 왔던 위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1921년 6월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위기에 대해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같은 양상의 부침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위기 국면과 개선 국면을 오가는 이러한 부침은 자본주의 태동 이래 하나의 속성이 되었으며, 그 무덤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본주의가 빠르게 발전하는 국면에서 위기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피상적이지만 (…) 쇠퇴 국면에서 위기는 지속성을 갖추고, 그 회복은 투기를 기반으로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모습을 띤다.”
본질적인 진전들, 즉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 금융, “주식 소유자들의 사회적 기생충으로의 전환”(트로츠키-우리 시대의 맑스주의, 1939),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의 분열 등등 이 문제들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경제의 금융화 문제 또한 마찬가지로 새로운 게 아닌데 현재의 위기가 금융 부문의 손실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더라도 그렇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미 100년 전에 레닌은 제국주의를 “노쇠한 국면”에 접어든 자본주의로 규정했고, 트로츠키는 이행기강령에서 “자본주의의 단발마”라고 규정했다.
이 단발마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 허나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체제가 지속되는 기간을 인간의 생애와 같은 척도로 잴 수는 없는 법이다.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나긴 단발마 때문에 지난 세기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치렀다.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자본주의는 한동안 진정 국면에 접어든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 국면은 한정적이고 피상적이었는데, 그 기간은 20여 년에 불과했으며 1970년대에 시작된 연속적인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기간보다 더 짧았다. 국제 통화 시스템의 붕괴는 장기간에 걸쳐 여타의 격렬한 금융 격변을 초래했는데,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감당할 수 없었던 세계적 규모의 생산 침체와 대규모 실업사태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시장, 다시 말해 인구 대다수의 구매력 즉 노동자계급 대중 특히 임금생활자들의 구매력이 표현되는 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기업들이 그 주인과 주식소유자들의 이윤을 증대시켜줄 정도의 매출 증가를 기대하지 못하는 지점으로까지 이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잉여가치를 둘러싼 자본가들 간의 투쟁…
과학과 기술은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초래하는 온갖 방해와 독점기업들 간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모순 중 하나인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시장의 제한 간의 모순을 한층 더 격화시키고 있다.
세계 생산량은 잉여가치, 즉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 얻고 자본가들이 독점하는 잉여가치의 확대를 보장하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적 이윤에 기반을 둔 경제에서 생산량이 이처럼 불충분하게 성장하면 자본가들 간의 경쟁은 한층 더 격화된다. 자본가들은 더 큰 몫의 잉여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에게 더 사나워지고 잔인해진다.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자본가들 간의 이러한 전쟁은 생산에 압력을 가한다. 자본가 개별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계급으로서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익에도 반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피착취계급과의 관계에서는 자기 계급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가 자신들 간의 관계에서는 정글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그들 세계의 두 가지 측면이자 분명한 현실이다.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익과 자본가 개별의 이익 사이의 이러한 변증법적 대립은 경제의 금융화 때문에 더 악화된다.
부르주아지들이 거둬들이는 온갖 종류의 수익 가운데 금융 수익이 더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생산보다 금융 투자가 대자본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 준다. 이로써 대자본은 금융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생산에 더 적게 투자하게 된다.
금융의 발전은 전체 이윤 총량 중 가장 큰 부분을 금융 부문이 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이 “성장”이라고 얘기할 때, 그것은 주로 금융 부문의 이익, 그리고 가장 힘 있는 기업들의 이익이 증가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오너와 주식소유자들의 부가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은 자본주의 경제가 제국주의 국면에 접어들면서부터 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 경제가 금융화되면 될수록 금융 부문의 더 많은 부분이 다른 모든 실물 경제활동체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종의 자본이, 더 정확히 말해 대부르주아지가 독점한 자본 중 일부가 다른 모든 경제활동체의 배후로 몸을 숨긴다고 해서 전체 경제가 금융 부문에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금융은 자본주의 경제를 갉아 먹는 기생충인 것이다.

… 피착취자에 맞선 계급 전쟁의 배경
잉여가치의 총량에서 자기 몫을 챙기고자 하는 자본가 기업들 간의 경쟁은 그 잉여가치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계급과 벌이는 계급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펼쳐진다.
착취당하는 대중으로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든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든 착취가 강화되는 것으로부터 고통받는다.
공공서비스, 병원, 요양원, 학교, 그리고 대중교통의 이용자로서 노동자들은 그 시스템이 낡고 노후화되는 상황으로부터, 그리고 국가 재정이 금융을 살찌우는 데 쓰이는 상황으로부터 고통받는다.
금융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를 무정부상태의 절정으로 몰아가며, 자본가 기업들 간의 경쟁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을 격화시킨다.
뼈다귀가 부족해지면 개들은 상대방을 물어뜯기 위해 더 난폭해지며, 그중 가장 사납고 교활하며 다른 모든 강자들을 능가하는 개만이 뼈다귀를 독차지한다. 대신 더 작고 약한 개들은 그 대가를 치른다!
이와 같은 경제상황이 개별국가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현재적 정치적 사건의 기반이다.
그 나라의 정세가 어떠하든 간에 또는 어떤 인물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든 간에, 우리 노동자들은 모든 국가에서 반노동자계급적 법안들과 긴축 정책들을 마주하고 있다. 권력의 얼굴은 바뀔지언정 국가 총수익 중 부르주아지의 몫을 늘리고자 하는 목표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가장 힘세고 부유한 부르주아 집단은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는 것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부르주아 집단의 몫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자신의 몫을 증대시키려 애쓰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국제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다른 나라 경쟁자로부터 자국 자본가계급을 보호하려는 국가적 개입이 국제적 차원에서 조장되고 있다. 우선 미국이 중국과 유럽을 상대로 해서 벌이고 있는 무역 전쟁이 있다. 그리고 유럽회원국을 포함해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좀 더 조심스러운 전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저개발 국가들을 상대로 해서 벌이고 있는 무역 전쟁이 있다. 물론 여기서 전쟁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은데 왜냐하면 그 전쟁이란 게 일방적일뿐만 아니라 거기에 동원되는 무기 또한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열 2위의 유럽 제국주의 강대국들조차 (그들 특유의 내부 분열 때문에) 미 제국주의에 대적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이다. 이는 이란과 러시아, 쿠바 그 밖의 다른 여러 나라에 대해 부분적이거나 전면적인 보이콧을 강제해내는 미국의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내뱉는 가련한 한탄을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무역전쟁들은 더더욱 복잡한 것이다.(그리고 그만큼 더 불합리한 것이다. 비록 그 불합리함이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돼 있는 양상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자본주의가 극히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해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한 나라의 보호주의 조치들은 결국 상대국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자국 자본가를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트럼프가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우고 대부분의 보호무역주의 위협들이 행동을 동반하기보다는 구두상의 위협에 머무는 이유다. 그런데 금융화된 세계 경제의 자산 대부분이 투기용으로 전환돼 있는 상황에서 이 가상의 위협들은 전혀 예기치 않은 실제적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다.

군사적 충돌, 경제 전쟁의 표현
지금은 국지전에 머물고 있지만, 군사적 충동은 경제 전쟁의 직간접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특히 중동 지역에서 극명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유자원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날선 대립이 항상적으로 대두되어 왔으며, 그것은 경제 위기의 기간 동안에 더 악화되었다. 시리아 북부의 이들리브에서 폭탄 공격으로 죽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얼마 전에 모술이나 알레포에서 숨진 사람들은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경제 전쟁 때문에 죽는 것으로, 정치지도자들은 감히 그들의 죽음이 조국을 위한 것이라고 거짓말할 수 없다. 폭탄 공격을 피해 이민 행렬에 합류하는 사람들, 빈곤과 독재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경제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혼돈스러운 경제 상황은 국제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 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화된 경제에 정치가 개입한다.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지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빛의 속도로 이동시키는 금융화된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이다. 생산적인 투자와 단지 투기가 목적인 투자 사이의 구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제국주의는 피바람과 대중의 고통을 통해 그 지배권을 장악했다. 대중 전체가 대자본의 수탈과 식민지화로 고통받았다.
제국주의는 상품과 자원에 대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수탈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로나 항만, 철로 등을 구축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금융화된 제국주의는 그런 조치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본의 이동은 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무질서하다. 투기 목적으로 전환된 자산은 주식은 물론 통화변동마저 그 대상으로 삼으며, 심지어 철, 구리, 아연 등의 광물자원뿐만 아니라 목재, 밀, 포도주 등의 농업자원에도 손을 뻗는다. 투기자본은 모든 나라에 대해, 그 지불능력과 경제적 수익성에 투기한다. 그들은 한순간에 특정 국가를 집중 공략해 최대한으로 돈을 뽑아내고서는 침투할 때보다 더 빠르게 빠져 나가 해당 국가를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정부 차원의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같은 정치적 결정,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조치, 이탈리아 극우 세력의 집권 등등의 일들이 발작적인 투기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경제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키고 있다. 정치적 혼란이 경제적 혼란에 반영되고 역으로 경제적 혼란이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피착취자에겐 노동자계급 강령과 그 강령을 체현할 정당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에 드리워진 현재의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삶이 이미 상당히 악화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의 위기는 지난 시기의 가장 큰 위기, 1929년에 시작돼 전 인류를 야만의 상태로 몰아갔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1929년 검은 화요일의 무자비한 주식시장 붕괴와 같은 사건과 함께 시작되지는 않았다. 2008년에 정말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발했지만 이 위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위기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전의 위기가 초래한 양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1930년대 당시의 근본 문제는 과연 사회의 어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지금은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사회는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다. 객관적인 상황은 다시금 사회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바, 이 혁명은 부르주아 권력을 파괴하고 조직된 노동자들이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며,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변혁을 시작함으로써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이윤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체제에 종식을 고할 것이다.
이 사회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유일한 사회 계급은 노동자계급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은 지난 시기 여러 차례에 걸쳐 부르주아 전복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독자적으로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그러한 목표를 설정한 주요 정당은 프랑스 사회당이었다. 그러나 이 당은 지금껏 오랫동안 지배자들의 2중대로 기능하고 있다. 비록 노동자계급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 당은 트로츠키의 생애 기간 동안에도 이미 정부 정당이었다. 그런데 이 당은 이제 더 이상 노동자계급에 뿌리를 두지 않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은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 질서에 헌신하는 정치인들의 집합소로 변모했으며, 부르주아의 핵심 좌익정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극적으로 쇠락했다.
프랑스 공산당이 약화되는 사회당을 대신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당이 사회당의 전철을 밟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이 두 당의 유일한 차이는 공산당은 부르주아에 영합하기 이전에 소비에트연방의 관료계급에 영합하면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두 당은 걸어 온 길은 서로 달랐으나 그 결말은 똑같았다. 노동조합들 또한 점차 국가기관으로 통합되었으며, 비슷한 길을 걸었다.
위기와 그 위기의 결과들, 그리고 다가오는 전쟁을 마주하면서 트로츠키는 1938년에 그 시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 이 사상은 트로츠키가 이행기강령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 번에 걸쳐 반복할 정도로 중요한 사상이다.
한편, 트로츠키의 죽음 이후,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양상이 계속해서 파멸적인 결과들을 낳고 있다. 이전의 노동자계급 정당들은 자본가계급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그들은 자본가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계급투쟁 사상, 특히 노동자계급이 의식적으로 전개하는 계급투쟁 사상에 가면을 씌웠다.
그러나 사회 계급 간의 투쟁은 단순히 사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사회관계에 뿌리를 둔 명백한 현실이다. 위기가 격화될수록 계급투쟁의 현실은 더 명확한 형태로 드러난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뿌리 깊은 계급투쟁의 현실에 의식적인 정치표현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가장 본질적인 임무이며, 다른 모든 문제들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위기와 그 결과들에 직면해 노동자계급은 필연적으로 분기할 것인 바, 그 분기는 반드시 사회혁명의 기치 아래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반드시 자신의 강령을 가다듬고 그 강령을 구체화할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경과했지만 이 임무는 트로츠키 시대에 주어졌던 임무와 똑같이 현재에도 필수적이다. 이행기강령이 오늘날의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내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행기강령에서 전개되는 양상이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세밀히 검토하거나 트로츠키가 말한 “이행기요구”를 어떻게 정식화할 것인지 하는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의 행동 강령이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사상은 대중과 결합하면 곧 물리력이 된다.” 그러나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일이 저절로 벌어지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임무는 이 강령을 널리 알리고 설사 이 강령이 현실과,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자각과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력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한편, 1938년은 1936년의 총파업을 통해 얻었던 성과들이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지 않는 시기였다. 중국과 에디오피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스페인 혁명의 패배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알려졌다. 이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노동자계급은 이전에 이룩한 모든 성과들을 파괴당하고 사회 전체가 야만의 늪으로 빠질 것이었다.
다른 한편, 1930년대 중반에 작동했던 메카니즘, 즉 세계를 두 개의 적대진영으로 나눠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격돌하게 했던 메카니즘이 오늘날에도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는 없다. 역사는 절대 같은 모습을 띠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결코 중단된 적이 없었던 수많은 국지전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으며, 세계 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 노동자계급의 자각 정도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데 필요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1938년 이행기강령 토론에서 트로츠키가 설명했듯이 “우리 활동의 과학성은 우리의 강령을 정치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일시적인 상태에 맞추는 것에 있지도 않으며, 강령을 사회 경제구조의 계급적 기초가 드러내는 객관적인 상황에 맞추는 것에 있다”.
여기서 객관적인 상황이란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한 요구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물론 이 요구들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제기되는 요구여야 하며, 부르주아지들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부르주아들을 대변하는 자들이 퍼뜨리는 환상과는 반대되는 요구여야 한다.
실업에 맞선 가장 효율적이고도 유일한 투쟁방법은 모든 해고를 금지하고, 한 푼의 임금 삭감도 없이 모두가 함께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이 전술은 실업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선전하기가 더 쉬워진다.
임금과 연금을 물가인상에 맞춰 자동으로 인상해 그 구매력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인플레이션이 보통 수준에 머물고 있을 때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으로 그런 요구가 적절할 수 있는데 최근의 터키 사례가 그렇다. 당시 터키 리라화 가치가 달러 대비 급락하자 노동자들은 자신의 구매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일부 부르주아 세력 내에서 고인플레이션이 예측됐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기까지 했던 것이다.
노동자 민병대를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노동자들의 관심사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과거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나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아니, 파시스트당이나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의 상황조차도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이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곧 중차대하고 정당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독일에서는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극우세력이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이민자들과 그들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체 노동자와 그 조직들, 그리고 제국주의 민주주의 내에 잔존하는 약간의 민주적 자유마저 위협한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중단시키지 못할 경우 머잖아 그것은 필연적으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단속으로 전환될 것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자신의 출신이 어디이든 간에 자신과 자신의 노동조합(비록 그 노동조합이 부르주아 정치시스템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을지라도)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최근 들어, 점차 더 반동적인 결정이 대기업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여러 지역에 회사를 세우면서 지역의 환경문제나 지역민들의 삶(프랑스령 남미 기아나의 황금산처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역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한편, 국가가 나서서 고속도로나 공항, 철로 등의 새 인프라를 구축하는 문제를 두고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 일인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해가 아니라 오직 개인의 이해에 기초해 내린 결정들이 또 다른 반동을 부르는 일이 점차 더 잦아지고 있는데, 때때로 이런 반동들은 산업 복합체나 다른 인프라 구축사업의 유해성에 대한 항의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협회와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부는 이런 항의들을 구체화시키고 다른 일부는 음식물을 비롯해 여러 영역의 이슈들에 대해 그 투명성이나 추적가능성과 관련된 사상을 대중화하려 애쓰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이슈와 그것을 대변하는 조직들은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유래한다.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그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특징을 갖춘다. 그들은 사회악에 대한 좁은 시야, 악의 근원을 공격하는 데서의 무능력,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문을 품는 데에서의 무능력이라는 소부르주아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한다. 그런데 소부르주아들은 자본주의를 공격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경향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기준에 맞춰 제기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전망을 자본주의를 개선해 인간과 자연에 좀 더 조화시키는 것에 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유토피아적이고 반동적이다.
때로는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열망에 영감을 받은 시위들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거나 정부로 하여금 특정 프로젝트에서 어느 정도 물러서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성공은 최선의 경우에도 부분적이거나 교착상태에 빠져들 수 있을 뿐이며, 최악의 경우 개인적이거나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요구로 왜곡되고 만다. 소부르주아의 태생적으로 모험적이고 막다른 정치경향은 그들이 하나의 사회계급으로서 기후변화나 해양과 대기의 악화 등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에 맞서는 데서 심각한 무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구성원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투명성이라는 감상적인 사상을 자본가계급의 행동에 대한 실제적인 통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노동자들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 분배를 담당한다. 노동자계급이 생산의 심장부에 위치한 유일한 사회계급인 것이다. 이는 은행이나 다국적 기업, 보험회사 등등의 금융기관 심장부에 피고용인 함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경제적 지배력이 깃들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자본가계급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가 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가 부르주아 몰수를 향한 첫 걸음이다.
오늘날 기업비밀과 영업비밀을 철폐하고 생산과 은행에 대해 노동자 통제를 확립하는 문제가 요원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는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임금삭감 없는 일자리 나누기’나 ‘물가-임금연동제’ 요구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노동자 통제가 이 요구들에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계급 투쟁 강령을 기초하는 데에서 이와 같은 요구들을 정식화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트로츠키의 말을 빌면, 강령이 노동자들의 현재적 심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객관적 필요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이 요구들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현 시기의 지배적인 사건들을 예의 주시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결집 사상을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현재의 정세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파괴적인 결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부분적인 해결책에 자신을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최악의 경우 막다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사회 세력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의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거칠게 야만을 향해 퇴고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사회적 존재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신념 아래 전진한다.

프랑스 혁명적 노동자조직 LO 월간지
<계급투쟁> 194호, 2018년 9-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