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쪽에는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는 빈곤의 축적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주의 핵심사상을 연재 기사로 다루고 있다.

① 마르크스 철학은 왜 노동자의 철학인가?
② 노동자계급 혁명가, 마르크스의 삶과 투쟁
③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공산당 선언>
④ 노동자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 문재인 자본가정부 대 노동자정부 파리꼬뮨
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⑥ “노동자해방은 노동자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⑦ <자본> 1 –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 잉여가치
⑧ <자본> 2 – “자본주의는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⑨ <자본> 3 – “한쪽에는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는 빈곤의 축적”
⑩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

38,208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최근 5년간(2013~2017 회계연도) 무려 9,552억 원을 주식 배당금으로 받았다. 2014년 봄부터 식물인간 상태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도 수천억을 꿀꺽 삼킨 것이다. 9,552억 원은 연봉 2,500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38,208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삶은? 거대한 촛불시위로 정권이 바뀐 지 오래지만 노동자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 경제학자 100여 명이 거의 모든 나라의 소득, 자산 불평등 데이터를 수집해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을 내놓았다. 이 책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세계 하위 50%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상위 1%와 하위 50%의 소득 격차는 1980년 27배에서 오늘날 81배로 벌어졌다. 빈부격차가 매우 빠르게 격심해진 것이다.

극심한 자본주의 불평등의 뿌리는 노동착취

이런 불평등은 분명히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불평등이 왜 발생하며 어떻게 나날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지를 매우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오늘날 가장 뛰어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불평등의 심화를 현상적으로만 분석한다. 오직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적 후예들만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은 자본가들의 노동착취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명쾌하게 밝혔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은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며, …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로 떨어뜨리며, …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과정에서 비열하기 때문에 더욱 혐오스러운 자본의 독재에 노동자를 굴복시키고, …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수레바퀴 밑으로 질질 끌고 간다.”(<자본론> 1권(하), 비봉출판사, 878-879쪽)
마르크스의 말은 마치 그가 태안화력 김용균님 사망 사고를 눈앞에서 보며 설명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컨베이어 벨트는 석탄을 빠르게 운반할 수 있는 장치이지만,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이었으며 결국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김용균님의 어머니는 현장에 가서 “너무도 많은 작업량과 열악한 환경”, “먼지가 많이 날려 잘 안 보이고, 어두운” 공간을 목격하고, 그곳을 “살인병기”라고 불렀다. 청년실업이 심각했기에 김용균님은 마지못해 살인병기에 들어가 일하다가 쓰러졌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수많은 김용균을 오늘도, 이 시간에도 악랄하게 쥐어짜며 부를 하늘 높이 쌓아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무덤을 팔 노동자들

이건희 회장이 수천억을 벌어들이고, 세계의 빈부 격차가 끝없이 벌어지고 있는 건 모두 노동자 피땀의 결실인 공장과 기계를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해 더 많은 노동자의 더 많은 피땀을 쥐어짜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단결해서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를 끝장낼 때까지, 즉 지금까지 수탈당했던 자들이 수탈자들을 수탈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 때까지, 자본가계급은 나날이 부를 축적하고 노동자계급은 나날이 빈곤을 축적할 수밖에 없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