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어이없게 마무리된 노동부 농성 — 희망은 패배를 먹고 일어난다


12월 7일 21시 50분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부 창원지청 농성이 종료되었다. 노동부가 제시한 중재안에 싸인을 하고 농성단은 내려왔다.
중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고된 63명 채용에 대해선 (하청)업체에 일임한다. 채용시기는 합의시점부터 발생하는 T/O에 따라 하청업체가 최대한 우선적으로 채용에 노력한다.” 해고자를 복직시킨다는 실질적인 내용도 없는 형식적인 문구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내용 없는 중재안에 합의하고 투쟁이 마무리되었는가?

투쟁의 시작

‘해고자 복직, 불법파견 문제 해결, 카허 카젬 사장 구속’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1월 12일 노동부 창원지청 농성에 돌입했다. 대법원에서도 인정한 불법파견을 시정조치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노조로 뭉친 비정규직을 한국지엠은 해고했다. 그리고 노동부는 한국지엠의 불법행위를 14년 동안 묵인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의 또다른 공범인 노동부가 해고자 복직과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는 지회 조합원 5명과 민주노총 경남본부, 금속노조 경남지부 간부들 3명이 함께했다. 1년 가까이 해고되어 투쟁한 노동자들의 복직을 만들어내자는 각오로 상급단체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투쟁의 전개

노동부 농성이 시작되고 지역의 연대가 확대되었다. 그동안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싸움에 지역의 연대는 취약했다. 그런데 이번 노동부 농성에선 적극적인 연대가 이뤄지고 지역대책위도 힘있게 결합했다. 장기투쟁에 지쳐있던 투쟁대오에 연대는 활기를 불어넣었다. 11월 21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는 3,000여 명가량이 참여해 검찰청에서 노동부까지 행진하며 투쟁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투쟁이 장기화되자 노동부는 12월 3일 농성자들과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고소장을 날리고, 12월 7일까지 자진 퇴거하지 않으면 경찰력을 투입해 해산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창원노동청 점거농성을 비난하면서 엄정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노사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해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있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농성단과 투쟁대오는 불법파견을 저지른 한국지엠에는 큰소리도 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협박하는 적반하장의 모습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높였다. 오히려 공권력 투입 시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힘있게 대응할 것을 준비했다.

투쟁의 마무리

그러나 투쟁의 약점은 어이없는 곳에서 등장했다. 그동안 대표로 노동부, 하청업체와 교섭을 담당해왔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과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노동부 농성을 종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엠이 군산공장 폐쇄에 멈추지 않고 연구개발(R&D) 법인분리를 비롯해 창원공장 1교대 전환을 들먹이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부 농성으로 해고자 복직을 끌어내는 것은 어렵다며 노동부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노동부 중재안의 내용은 3개월 단기계약직으로 복직하는 것을 의미하며, 업체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백지수표임을 알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히려 공권력 투입 시도에 맞서 투쟁을 조직할 것을 제기했다.
12월 7일 오후,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경찰 일부가 노동부에 들어갔고, 교섭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교섭이 결렬되면 공권력이 투입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비상대기가 떨어졌다. 안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두 시간 정도가 흘러갔다.
그러다 농성단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은 교섭대표단이 노동부 중재안을 가지고 농성단에게 수용할 것을 요구했고, 3시간가량 중재안에 싸인할 것을 종용했으나 농성단에서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해고자들은 ‘중재안의 내용을 알지도 못하며, 내용이 나왔다면 해고자들과 토론한 후 싸인을 해야한다. 일방적인 합의는 안 된다’는 내용을 농성단에 전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재안에 교섭대표단과 해복투 부의장이 싸인했다는 소식과 함께 농성자들이 내려오기로 했다며 농성이 종료되었다. 몇 시간 만에 벌어진 급작스러운 상황에 해복투를 비롯한 연대대오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황당하고 분노스러운 순간이었다.

비민주적 운영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대표단의 일방적 결정을 통보받았다. 직권조인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합의내용에 대한 설명은 간담회에서 하겠다며 월요일 오후로 미뤄놓고는 10일(월)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한다고 결정했다. 내용도 전달받지 못한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연기를 요청했으나 비정규직지회의 제기는 무시되었다. 결국 투쟁당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황당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중재안에 싸인한 지 3일이 지난 월요일 해고자들과 지부장, 본부장의 간담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확인한 것은 중재안의 내용은 구속력이 없고, 하청업체가 채용공고를 내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대기하다가 TO가 생기면 업체가 연락해서 재고용할 거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확실히 진행될 거라는 담보도 없었다. 다만 노동부가 책임 있게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아무 구속력도 없고 계약직으로 신규 입사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투쟁주체를 무시하면서 급하게 마무리지은 상황에 대해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부 농성 중단 이후 일주일 동안 중재안을 두고 해고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중재안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부 농성이 중단된 상황에서 투쟁을 계속 이어갔을 때 투쟁대오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는 또다른 고민이었다. 생계의 어려움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보다는 3개월 계약직으로라도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이후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고 굴욕적인 내용이 담긴 중재안을 받는 것은 1년 동안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중재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현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히려 장기투쟁을 결의하고 투쟁의지를 높여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느 상황이건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최악과 최최악을 사이에 두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노동자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결국 중재안 수용 여부를 두고 찬반투표가 진행되었고, 중재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투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1년간의 투쟁이 마무리되고 있다. 투쟁주체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된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치에 해고자들은 분노한다. 허무함에 눈물도 흘린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모두 돌아가기 위한 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19년 연말 1교대 전환으로 대대적인 비정규직 해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싸워갈지 준비해가야 한다. 이번 마무리는 또다른 투쟁의 시작이다.
이번 싸움에서 비정규직지회는 패배했다. 비정규직 조합원 150명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비조합원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고, 정규직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규직지회의 반노동자적인 인소싱을 겪어야 했다. 더 넓은 연대를 끌어내는 데에서도 부족했다. 이 모든 부족함의 결과로 노동부 농성 막바지엔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인 투쟁종료 선언을 눈물을 머금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패배로 끝을 맺지 않을 것이다. 이번 투쟁이 남겨준 과제를 곱씹으며 전진해 나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현장의 주인으로 서고자 노력하고 의지를 세우는 동지들이 있다면 이번 패배는 패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연대하며 함께해준 동지들에 대한 감사는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아흔아홉 번 패배하더라도 마침내 올 한 번의 승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