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고]영화평 — “끊임없이 의심하고, 깨인 눈으로 세상을 봐야”


국가부도의날

“저는 1주일 안에 대한민국이 망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국가 부도가 시작되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무능과 무지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IMF 위기’라 불리우는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서 투자를 결심하는 인물 윤정학의 대사다. 해마다 고도성장을 기록하던 한국이 부도? 경제를 낙관하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기업들은 줄줄이 부도를 냈고,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빚더미를 껴안은 사람들은 목을 매달고,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 와중에 윤정학은 한탕을 위한 도박을 감행한다.

무능한 정부의 책임전가

윤정학의 대사는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다. 바로 정부의 무능이다. 이 점에서 영화는 고증을 철저하게 해낸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억지로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국가 정책을 무조건 수용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 안 하고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 전문적인 경제 지식이 없어도 각 분야에서 당시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쉽게 보여준다. 무능하고 무지한 정치인들은 완벽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들은 물과 전기를 아끼라고 말하고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자고 한다. 그러나 그 금들은 노동자의 삶이 아니라 기업을 살리는 데 쓰이고 만다.

국가 부도의 진정한 원인

이 영화는 정치인들의 무능과 무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래서 얼핏 보면 그들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IMF 총재가 한국과 협상하면서 대선 후보자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IMF 각서에 서명하라고 협박했다는 영화 장면에서도 드러나듯, 그 어떤 정치인이 당선됐어도 결국 IMF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살인적인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공격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미도파 백화점, 한보철강처럼 당시 재벌은 투자를 엄청나게 했다. 그에 따른 활황과 과잉생산은 공황의 씨앗이 됐다. 거대한 거품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때마침 미국의 금리가 급등해 외국 투자자들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서처럼 한국에서도 투자금을 회수하자,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다. 경제는 얼어붙고 기업과 은행들은 연쇄적으로 도산한다. 결국 1997년 12월, 한국은 공황을 맞는다.
즉, 이 국가 부도 사태의 진정한 원인은 정치인의 무능이 아니라,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을 낳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자체다. 이 상업영화는 이런 점까지는 다루지 않는다.

어디로 나아갈 건가

윤정학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은 국가 부도와 같은 위기 상황을 개인적 치부를 위한 기회로 여긴다. 그들의 이기적인 선택은 모두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어떻게 이 위기를 볼 것인지 고민하고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특히 열심히 일했어도 공황이 터지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대대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영화는 위기의 역사를 되짚고 무엇을 배우고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해볼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