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종로고시원 화재 참사 — 누가 노동자들을 창문 없는 방에 가뒀나


고시원에서 탈출해 다시 고시원으로

불이 난 고시원을 마지막으로 탈출한 노동자는 바로 옆 고시원에 다시 들어갔다. 애초에 보증금 몇백만 원이 없어서 살았는데 그가 다른 곳 어디로 가겠는가? 참사가 난 국일 고시원에서는 이 노동자처럼 매일 바로 앞 인력 사무소에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꽤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가장 호화로운 아파트와 저택이 밀집해 있고 백화점엔 없는 것이 없는 서울. 밤이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유흥업소가 손님을 부르고 수십억이 헤프게 왔다갔다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도시. 그곳엔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다만 노동자들에게 줄 집은 없었을 뿐이다. 용역이란 이름을 달고 서울의 건물들을 쌓아올렸을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건 고시원의 창문 없는 방뿐이었다.

뒤늦은 생색내기

사건이 알려지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약계층 주거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시인하듯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도 실효성이 없다. 해 뜨기 전에 잠자리를 뛰쳐나가 줄을 서 일감을 받고 해가 지면 겨우 퇴근한다. 하루의 보상이자, 수면제인 소주 한잔 걸치고 나면 잘 시간이다. 그런 이들에게 3분이라도 더 자게 해주는 건 사무소 앞 고시원이지 저 멀리의 임대주택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박순자 국토위원장은 “국토부의 화재안전성 강화 사업 예산 28억8,000만 원을 증액”해 줄 테니 “화재안전 대책을 얼른 마련하라”고 생색을 냈다. 하지만 과연 관련규정이 없어서 참사가 일어났을까? 우선 국일 고시원은 2009년 전에 건설되었다는 이유로 종로구 관할 안전 점검을 피해갈 수 있었다. 서울시는 건물주가 스프링클러 지원 사업을 동의하지 않아 설치하지 못했다고 어물거렸다.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던 고시원 업주는 “고시원을 인수하던 2007년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는 제도가 없었다.”는 소리를 지껄였다. 이런 고시원이 서울에 천 개가 넘는다. 작년에도 고시원 화재는 50여 건이나 있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건물은 없는 건물이다. 파악되지 않는 가난은 없는 가난이다. 파악되지 않는 삶은 없는 삶이다. 이번 참사가 이만큼도 여론화되지 않았으면 50건의 화재와 같이 묻히진 않았을까? 참사의 주범들은 사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고시원에 들어와 살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창문이 없는 방도 자기가 선택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 모든 건 합법이다.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딱히 해결할 의사가 없는

경기는 안 좋고 실업자는 넘친다. 겨우 살아갈 만큼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그마저 받을 기회가 없는 빈민들은 전국의 도시들 어느 구석에 판자를 지붕삼고 박스를 이불삼아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최저임금 이하라도 감사히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월세를 뽑고 싶은 건물주들은 거머리처럼 등에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또 규정을 피해가며 가난한 민중을 창문 없는 방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것을 묵인하는 정치인들의 유감표명과 몇십 억 지원은 참사를 며칠 미룰 뿐이다. 이제 그런 체제를 용인할 것인지는 노동자계급의 선택에 달렸다.

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