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자본은 온몸에 피와 오물을 흘리며 등장했다”


① 마르크스 철학은 왜 노동자의 철학인가?
② 노동자계급 혁명가, 마르크스의 삶과 투쟁
③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공산당 선언>
④ 노동자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 문재인 자본가정부 대 노동자정부 파리꼬뮨
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⑥ “노동자해방은 노동자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⑦ <자본> 1 –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 잉여가치
⑧ <자본> 2 – “자본주의는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⑨ <자본> 3 – “한쪽에는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는 빈곤의 축적”
⑩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

자본주의는 어떻게 등장했는가? 최초에 자본가는 어떻게 자본가가 됐고, 노동자는 어떻게 노동자가 됐는가? 이에 대해 자본가계급은 이런 얘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근면하고 절약하는 사람은 부를 축적했으며 게으른 불량배는 결국 자기 몸뚱아리 말고는 아무것도 팔 것이 없게 됐다.”

게으른 사람들이 노동자가 됐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중세 봉건제의 농노가 근대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자유로워져야 했다. 첫째,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의 역사적 역할을 미화하기 위해 이런 측면만 강조한다. 둘째, 토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생산을 위해서는 주체(노동력)와 객체(토지, 공장, 기계 같은 생산수단)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세의 대표적 생산수단은 토지였다. 중세의 농노들은 토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만, 즉 토지를 잃을 때만 공장과 기계를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고용돼 임금노동자가 된다. 농노를 토지로부터 강제로 분리해 노동자로 만드는 과정은 자본가계급의 형성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전형적이다.

“18세기에는 게일 사람들[스코틀랜드 고지인들]은 토지에서 축출됐을 뿐 아니라 국외로 이주하는 것마저 금지됐는데, 그것은 그들을 … 공장도시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었다. … 1814년부터 1820년까지 이 15,000명의 주민, 약 3,000세대의 가족은 체계적으로 축출되고 소탕됐다. 그들의 모든 촌락은 파괴되고 소각됐으며 모든 경지는 목장으로 전환됐다. 영국 병사들이 이것을 집행하기 위해 파견됐으며 주민들과 싸움까지 벌였다. 자기의 오두막집에서 떠나기를 거부한 노파는 불길 속에서 타 죽었다.”([자본론] 1권(하), 비봉, 999-1000쪽)
잔인한 법률

이처럼 폭력적 토지수탈로 추방된 사람들, 무일푼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빠르게 흡수될 수 없었다. 농촌에서 자연의 리듬에 따라 일하던 사람들이 공장의 기계적 규율을 순순히 받아들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쩔 도리가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됐는데, 서유럽의 모든 나라는 이들을 ‘자발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잔인한 법률을 만들어 공장노동에 길들여갔다. 가령 “부랑죄로 두 번 체포되면 다시 태형에 처하고 귀를 절반 자르며, 세 번 체포되면 그는 중죄인으로 또 공동체의 적으로 사형에 처해진다.”(1007쪽)

유례없는 배신‧매수‧학살‧비열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식민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노예화광산에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가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따위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1029쪽)
“17세기 최고의 자본주의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사는 ‘배신매수학살비열의 유례없는 광경’을 보여준다. … 자바 섬의 한 지방인 바뉴완기는 1750년에는 주민의 수가 80,000명 이상이었는데, 1811년에는 8,000명에 불과했다.”(1030쪽)

자본주의가 이렇게 등장했기에 맑스의 다음 말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