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노동자해방은 노동자 스스로 쟁취해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주의 핵심사상을 연재 기사로 다루고 있다.

① 마르크스 철학은 왜 노동자의 철학인가?
② 노동자계급 혁명가, 마르크스의 삶과 투쟁
③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공산당 선언>
④ 노동자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 문재인 자본가정부 대 노동자정부 파리꼬뮨
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⑥ “노동자해방은 노동자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⑦ <자본> 1 –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 잉여가치
⑧ <자본> 2 – “자본주의는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⑨ <자본> 3 – “한쪽에는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는 빈곤의 축적”
⑩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최초의 세계 노동자계급 대중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제1 인터내셔널)가 창립됐다.

“형식은 온건하게, 내용은 강경하게”

탐욕스런 자본가들이 파업을 깨기 위해 다른 나라 노동자들까지 불러들이는 모습을 보고 노동자들은 국제연대가 절실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처럼 주로 파업파괴를 막겠다는 제한된 목표에 따라 국제연대를 추구했기에, 제1 인터내셔널 안에는 잡다한 경향이 뒤섞여 있었다.
영국의 노조들은 자본가들이 식민지를 수탈해서 번 돈으로 개량의 떡고물을 던지자, 여기에 취해 과거의 혁명적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영국의 식민지인 아일랜드의 민족해방 투쟁도 지지하지 않았고, 아일랜드 노동자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프루동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이루어진 협동조합 체계를 만들자. 이것을 끊임없이 확대하면 마침내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라쌀레주의도 프루동주의와 마찬가지로 노동조합과 파업에 반대하며, 정부의 보조를 받는 협동조합망을 차츰 확대해 자본주의를 대체하자고 했다. 블랑키주의는 소수의 음모집단이 봉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는 처음부터 인내심을 갖고 이런 잡다한 기회주의 조류에 맞섰다. 제1 인터내셔널의 창립선언과 잠정규약을 마르크스가 썼는데, 다른 경향을 고려해 형식은 온건하되 내용은 강경하게 썼다.

사상적 통일을 위해 분투하다

“노동자계급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잠정규약 첫머리에 들어간 이 문장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이나 소부르주아 등 다른 계급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협동조합망’이라는 라쌀레주의 사상을 비판하며, 마르크스는 자본가권력을 노동자권력으로 바꾸는 노동자 정치혁명 없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을 재조직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지식인 등 소수 음모집단의 봉기가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사상을 마르크스는 철저히 거부했다. 단호한 정치투쟁은 필요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행동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영국 노조의 편협한 실리주의에도 끈질기게 맞서 싸웠다. 특히 <노동조합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글에서 영국 노조가 사소한 실리만 추구한 채, ‘전반적인 사회, 정치적 운동’들을 멀리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당면 이익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도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이익을 면밀히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에 편협한 실리주의가 널리 퍼져 있고, 미조직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하는 경우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조직의 혼

마르크스는 제1 인터내셔널의 지도부에 들어가 매주 회의를 하고, 각국 노동운동 지도자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여러 결의문을 작성하며 긴급하고 실천적인 문제들에 시기적절하게 대처했다. 그래서 레닌이 “마르크스는 이 조직의 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마르크스가 ‘훌륭한 이론가이자 실천적 지도자’로서 제1 인터내셔널을 이끌었기에 1876년 제1인터내셔널이 해산될 즈음에는 마르크스주의가 국제 노동자운동 속으로 깊숙이 퍼져나갔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