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노동자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 문재인 자본가정부 대 노동자정부 파리꼬뮨


Barricade_Voltaire_Lenoir_Commune_Paris_1871

6.13 지방선거 민주당 압승이 보여주듯,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문재인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노동자의 진정한 희망은 모든 자본가정부에 대한 환상을 거두고 진짜 노동자정부를 세우는 데 있다.
1870년 프랑스-독일 전쟁을 계기로 파리 노동자들이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제를 선포했다. 그러자 프랑스 자본가계급은 독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뒤, 파리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독재체제를 건설하려 했다. 이에 맞서 들고 일어난 파리 노동자들이 파리꼬뮨이라는 세계 최초의 노동자권력을 건설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꼬뮨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명쾌하게 밝혔다.

무늬만 노동존중 대 실제로 노동존중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을 줬다 뺐었고, 지엠과 중소조선소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동참하거나 앞장섰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를 외면했다. 무늬만 노동존중이다.
하지만 파리꼬뮨은 노동자를 위한 조치들을 곧바로 실행했다. 제빵 노동자의 야간작업을 금지시켰다. 자본가들이 온갖 구실로 벌금을 때려 노동자의 임금을 강탈해왔던 관행을 금지시켰다. 자본가들이 도망치거나 폐쇄한 작업장을 노동자들이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자본가 민주주의 대 노동자 민주주의

이처럼 노동자를 위한 조치를 바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꼬뮨이 노동자들이 함께 결정하고 함께 실행하는 노동자정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꼬뮨은 단순한 의회가 아니라, 활동하는 행정기관이면서 동시에 입법기관이어야만 했다”고 썼다.
왜 단순한 의회여선 안 되는가? 오늘날 의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과 탄력근로제 개악 기도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기본적으로 자본가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가 민주주의 기구다. 한편 의회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을 포함해 모든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기구인 것처럼 가장한다. 그래서 여러 사안에서 지루하게 논쟁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논쟁 끝에 의회가 자본가를 위한 법을 만들면 행정부가 신속하게 집행하지만, 자본가들에게 불리한 법 조항의 경우에는 권력의 핵심인 행정부가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일이 많다.
가령,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는 노동자를 파견할 수 없다. 각급 법원은 현대기아차, GM 등이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있다고 수차례 판결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10년 넘게 계속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정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

노동자정부라면

파리꼬뮨처럼 노동자들이 함께 결정하고 함께 실행하는 노동자정부였다면, 정몽구나 이재용 같은 불법파견 범죄자들을 오래 전에 감옥에 가뒀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판 노예제를 고대 노예제처럼 역사책에서만 발견할 수 있게, 비정규직 철폐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었을 것이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다. 레닌 등 러시아 혁명가들은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을 거듭 연구하며 실천한 끝에, 10월혁명을 성공시키고 착취와 억압이 없는 노동자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노동자의 희망은 파리꼬뮨과 러시아 소비에트 권력의 긍정적 전통을 어떻게 얼마나 계승,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