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투표권도 중요하지만, 청소년에겐 무엇보다 인간다운 삶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싸워서 얻어냈다

3월에 18세 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며 청소년들이 국회 앞 노숙농성을 벌였다. 43일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과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조속히 실현되게 하겠다’는 정책 협약을 맺었다. 이는 청소년들이 직접 활동을 통해 얻어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자한당이든 민주당이든 원하는 건 따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18세 선거권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이에 대한 일정한 여론이 형성되자 정치인들은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조차도 ‘선거연령 하향은 찬성’한다고 한 걸 보라. 하지만 ‘학교의 정치화를 불식하자’며 초등학교 취학 시기를 그만큼 앞당기자는 얼토당토않은 단서를 붙였다. 사실상 청소년의 권리 확장을 반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 했고 전교조도 의도적으로 불법화하지 않았는가. 이들은 청소년들을 자본과 국가의 필요에 맞게 양성하려고 노골적으로 나설 뿐이다.
반면 민주당은 어떠할까? 그들도 청소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청소년 선거권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여론이 형성되자 이것을 자기 지지 기반 확장에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거 연령이 1년 하향되면 60만 유권자가 추가로 생긴다. 이들을 통해 최대한 많은 표를 끌어모으고 싶을 것이다.

청소년의 삶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지배계급 정치인들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년들은 삶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을 나가 가장 열악한 곳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 산재로 죽는다. 콜센터에서 갖은 괴롭힘과 과다 업무에 시달리다 여고생이 저수지에 투신한 뒤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거기라도 계속 실습하게 해달라고 외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요구는 정말로 비참한 그들의 처지를 반증할 뿐이다.
또,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청소년은 취직 가능한 일자리가 제한적이어서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에 들어가고, 사업주의 폭력과 임금체불 등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엔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저항하기조차 어렵다. 그 즉시 생존 위협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은 어떤가? ‘정규직’이 되어야 자기 삶도 보장받고, 가족도 부양할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입시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경쟁체제는 끊임없이 환상을 불어넣으며 이들로부터 인권을 빼앗는다. 사태가 이렇게 될 동안 정치인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투쟁이 투표함 안에 갇히지 않으려면

수많은 공약을 내팽개치는 지배자들이 선거연령 1년 하향 약속을 언제 지킬지도 모르지만, 설사 약속을 실행한다 해도 그들은 1년 하향으로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모두 보장해준 것처럼 선전하려 할 것이다.
그 후에는 선거철에 잠깐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제스처를 취하고 당선되고 나면 시혜성 정책 하나 던져주고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투표권을 가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을 듣는 척할 뿐, 온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도 않고 온갖 차별을 해소하지도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노동조합 등을 만들어 주위 동료들과 단결하고 투쟁하면서 자기의 처지를 바꿔갈 수 있을 뿐이다.
지배계급은 청소년의 목소리 또한 ‘투표함’ 속에 가두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스스로가 싸우는 만큼 그 시도는 무력해질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청소년은 진정으로 자기 삶을 바꾸고 싶을 것이다. 그 열망을 지지하며 그들의 투쟁에 함께하자!

 

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