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성에게 낙태의 권리를!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 사회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며 자유로운 사랑과 그 결실로서의 자녀출산을 장려한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이라는 환상 뒤에는 여성에게 떠맡겨진 의무가 존재한다. 개선되어 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는 노동, 가사, 양육이란 3중의 책임이 오롯이 주어진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자신의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단절되기도 하고, 일과 가사와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슈퍼맘이 되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자녀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건강도 나빠진다. 사회적 관계도, 가족 내 위치와 책임감도 달라진다. 따라서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족쇄처럼 느껴지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두려워하게 된다.
매일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와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가시질 않는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이러한 부담감은 더욱더 커진다.

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는가?

여성이 임신했을 때 할 수 있는 두 선택 중 하나가 낙태다. 우리나라의 한 해 신생아가 45만 명인데 임신중절수술은 34만 건에 달한다. 그중에서 합법적 낙태 수술건수는 4.4%이고, 95% 이상이 불법 시술로 집계되고 있다. 기혼 여성의 임신중절 건수가 58%, 미혼여성은 42% 수준이다.
낙태를 한 기혼여성의 70%는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였고, 미혼여성의 경우 사회경제적 이유가 93%를 차지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정서가 한몫을 하겠지만 기혼이냐 미혼이냐를 떠나서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와 의료체계, 그리고 개인이 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은 여성에게 출산과양육을 두렵고 고통스러운 문제로 여기게 만든다.
게다가 출산을 원하지 않은 여성들은 불법적인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좋지 못한 의료 환경과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져야만 한다. 낙태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고통까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낙태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낙태권은 여성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필수불가결한 권리다. 여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에 대해 여성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고 새로운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노동력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중요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회가 법적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
또한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성관계란 늘 임신가능성을 가지며, 임신은 출산가능성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제한은 여성의 성적 권리 자체를 제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성이 낙태를 선택한 이유는 태아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서 모성이 태아를 배려한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태어난 이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울지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낙태의 문제를 생명존중이라는 추상적 도덕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여성해방의 조건

5월 카돌릭국가인 아일랜드에서 낙태허용법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폐지 청원에 23만 명이 서명해 올해 다시 한 번 낙태금지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낙태에 대한 전면적 허용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폐지된다고 해서 여성의 삶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낙태를 허용해야 여성들이 자신을 더 깊은 족쇄로 내모는 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라도 할 수 있게 된다.
트로츠키는 사회 진보를 평가하려면 여성과 자녀를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한다고 했다. 여성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결혼과 임신, 육아와 가사, 가족이라는 굴레가 여성 개인에게 부당한 의무를 전가하는 사회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뒤집어엎어야 한다.
여성이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고, 사회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때에야 여성들의 처지가 나아지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