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공산당 선언


공산당선언2

영화 <청년 마르크스>가 보여주듯, <공산당 선언>은 1848년 1월 마르크스가 29세, 엥겔스가 27세에 공동으로 작성한 글이다. 170년 전에 작성됐지만, <공산당 선언>은 여전히 생명력이 넘친다.

“현대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집행위원회”
문재인정부가 등장했을 때, 유시민은 보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새 정부를 방어하는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를 ‘정의 실현의 도구’로 간주하고, 문재인 정부가 정의를 실현해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취하는 자본가계급과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은 화해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의 정의와 노동자계급의 정의도 적대적이다.
가령, 지엠과 중소조선소에서 ‘단 한 명도 짜르지 마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정의라면, 수천 명을 짜르고 임금과 복지를 삭감해 자본가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자본가들과 문재인 정부의 정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의 실현의 도구’가 아니라 오직 자본가계급의 정의 실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현대의 국가권력은 자본가계급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라는 <공산당 선언>의 문구는 오늘날 더욱 더 노동자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레닌과 함께 1917년 10월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트로츠키는 <오늘날의 공산당선언>에서 “이 위원회의 업무처리능력이 떨어질 때마다 자본가계급은 이를 해산시켜버린다>고 했는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노무현으로 이어져온 한국 역사는 이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 얻을 것은 전 세계”
중앙일보는 5월 2일자 기사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각성제론 여전히 효력”이 있지만 스탈린 치하 소련을 고려해볼 때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공산당 선언>을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자본가계급 지식인들의 상투적 헛소리일 뿐이다.
중앙일보는 사회주의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무시”했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라고 보는 건 자본주의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심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는 자본가들의 속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모든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항상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공산당 선언>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알 수 있다.
중앙일보는 “사회주의 국가가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중앙집권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 인간의 자발적인 경제활동을 억압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했다. 그런데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는 반면, 살아 있는 사람[노동자]은 종속적이고 개성을 갖지 못한다”고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경제활동은 전혀 자발적이지 않기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노동자가 자발성을 잃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혁명은 노동자를 무한 착취하려는 자본가계급의 자발적 경제활동을 억압할 뿐이다. 사회주의 경제실험이 실패한 건 세계 노동자계급의 힘이 부족해 자본가계급의 자발적 착취활동을 확실하게 억누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일보는 “마르크스주의는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실업, 갑질, 공황, 금융위기 등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경종으로서”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는데, 그 폐해를 끝장낼 대안으로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공산당 선언>이 밝혔듯이, 혁명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