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한항공직원연대의 촛불집회 — 자발적 연대가 만들어낸 ‘을들의 반란’


대한항공촛불

조현민의 ‘물벼락 갑질’ 이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조씨 일가’의 온갖 갑질과 불법행위들이 폭로되고 있다. 변명으로 일관하던 조씨 일가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노동자들의 제보와 집단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법무부, 국토교통부, 노동부까지 압수수색이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많은 국가기관이 눈치를 보며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 노조가 있었지만 행동을 위해 필요했던 직원연대
대한항공에는 세 개의 노조가 있다. 하지만 물벼락 갑질에 터져 나온 노동자들의 분노를 담아낸 노조는 없다. 행동에 나선 노동자들은 노조를 불신하고 있으며 어떠한 노조나 정당의 개입도 거부하고 있다. 오죽하면 회사의 채증보다 노조의 감시가 더 무섭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가장 규모가 큰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인 대한항공노동조합은 위원장도 간선제로 선출하고 대의원도 사측의 면담을 통해 선출된다고 한다. 군 출신 조종사들이 민주노총 소속인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에서 탈퇴해 만든 대한한공조종사새노동조합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노사협력을 표방하고 있다. 두 번째로 큰 대한항공조종사노조도 조종사만 조합원이기 때문에 대한항공노동자들의 대표기구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불신에는 잔혹한 노조 탄압의 역사가 있다
어떤 노조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노동자들은 방법을 찾았다. 2014년 박창진 사무장이 땅콩회항사건으로 고립되어 홀로 싸울 때도 외면했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자발적 노예’의 삶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움직였다. 하지만 대한항공 노동자들이 애초부터 ‘자발적 노예’였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조합원에서 제외되었던 조종사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자 어용 대한항공노조에서도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2000년 승무원을 중심으로 민주객실지부가 만들어졌다. 툭하면 회사와 결탁한 어용노조 안에서 민주객실지부는 높은 임금인상, 비행시간 단축, 휴가 확충 등 민주노조다운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해고와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조합비 횡령 사건을 조작해 민주활동가를 고립시켰다.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두 명이 극심한 탄압과 자신을 배신한 동료들에 대한 실망으로 투신해 돌아가시기도 했다. 결국 2003년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었다.

한계를 넘어 대안을 찾는 노동자들
민주노조를 만들려던 선배들이 처참하게 무너져갔던 역사를 지켜본 노동자들은 이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분열로 멍들어 갔다. 하지만 오늘날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직종과 노조의 범위를 넘어 스스로 대안을 찾고 행동에 나선 대한항공노동자들의 용기는 마땅히 본받아야 한다. 총수일가의 퇴진에 국한된 요구와 전문경영인에 대한 환상, 노조와 정치에 대한 불신, 정규직만의 움직임이란 많은 한계에도 이들의 행동은 값지다.
이른바 민주노조라는 민주노총 안에서도 이들이 보여준 약점보다 더한 관료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가로막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본가 및 정부와의 거래로 대체해 버리는 사례는 태산을 이룬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힘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기구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노동자들의 투쟁과 단결을 가로막는 관료주의에 오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진 노동자들은 결국 대안을 찾아낸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