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곳, 학교


이 글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라는 책을 읽고 학생, 젊은 노동자 동지들과 토론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똑같은 네모난 책상, 겨우 앉을 수 있는 딱딱한 의자, 아침 이른 시간부터 심지어는 자정이 될 때까지 30-40명이 꼿꼿이 정면만을 바라보고 선생님이 부르는 것을 받아써야 하는 그곳. 학생들은 버티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그만두지 못합니다. 적어도 12년의 공교육 과정은 무사히 마쳐야 어디 가서 이력서라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취업’이 학교를 무사히 마쳐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공장 빼닮은 학교
기업은 월차 같은 것은 쓸 줄 모르는 근면 성실한 노동자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개근상을 충실하게 받은 학생들을 선별합니다. 잔업하라고 하면 하고 급할 땐 휴일에도 출근해줄 수 있는 헌신적인 노동자를 원합니다. 그래서 학교는 부당한 교칙을 내세우고 때로는 매질해 가면서까지 학생들을 말 잘 듣는 순종적인 인간으로 기르려고 합니다. 또 종이 치면 일을 시작하고, 종이 치면 일을 마치는 습관도 잘 들어 있어야 해서 학교와 공장은 쉬는 시간마다 똑같은 종소리가 울립니다.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것도 뻔합니다. 학생들을 방 한 칸에 몰아넣고 1등만 탈출시켜 준다고 경쟁시키니 어떻게든 더 많이, 더 높은 강도로 공부해야 하지 않겠어요? 일거리가 암만 많아져도 묵묵하게 일을 쳐낼 수 있는 건 이때부터 길러진 능력일 겁니다.
공교육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는 대부분 자본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니 생긴 문제들입니다.

학교에서 길들여진 노동자의 비극
기업이 생산을 해야만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스템에 충실하게 따르는 법을 최소 12년, 대학교까지 16년간 충분하게 배운 학생들은 시스템에 충실하게 따르는 노동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이 사회의 지배집단이 체제유지를 위해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기업이 평화롭게 생산할 수 있고, 국가 경쟁력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런 공교육의 과정은 노동자들의 삶에 반대의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날 노동자의 삶은 과연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매달 비슷하게 버는 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상여금이 삭감되어도 싫다고 한마디 못하고, 단기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당해도 못나간다고 한마디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곳곳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산재사망 사건들은 익숙한 소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말 잘 듣고 순응하는 삶은 더 고강도의 착취를 견뎌내야만 하는 결과를 의미할 뿐입니다.

목소리 내는 학생들
이 사회 곳곳에는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고 외치고 있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경남에서는 지난달 ‘학교에는 민주주의, 학생에겐 인권을!’이라는 주제로 청소년들이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청소년들은 자신의 참정권이 보장받길 요구하며 삭발도 하고 농성에도 돌입한 상황입니다.
이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옆 사람과 똑같은 노동자가 되어 서로 경쟁하면서 고통을 느끼고, 지배자들을 위해 희생되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묵살하는 정부
하지만 국가는 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묵살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기르겠다며 언론을 통해 연일 떠들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한 뒤 현재까지 시대에 따라 교육의 겉포장은 여러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바뀌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핵심이 귀 없고 입 없는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거라면 어떻게 청소년을 위한 교육이고, 노동자를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본가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청소년들을 억압하고 차별할 것입니다.

깨비